싱가포르가 자국 통화의 평가절상 속도를 늦추도록 하는 깜짝 통화완화 정책을 내놓으면서 전 세계 주요국들의 통화전쟁에 가열되고 있다.
싱가포르통화감독청(MAS)은 이날 당초 예정에 없던 성명을 통해 싱가포르달러(SGD)에 대한 일종의 바스킷 방식 변동환율인 '명목실효환율(NEER)'의 변동 기울기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NEER는 싱가포르와 주로 교역하는 국가들의 통화로 바스킷을 구성해 싱가포르달러 대비 가중 평균한 환율이다. MAS는 NEER의 변동 기울기와 폭, 중심점 변경을 통해 자국 통화가치를 조절하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거나 올리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이날 MAS가 변동 기울기를 줄이면서 싱가포르달러는 평가절하돼 발표 이후 싱가포르달러 가치가 전일 대비 0.9% 하락하며 지난 2010년 9월 이후 최저치(1달러당 1.3513싱가포르달러)를 기록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다만 MAS는 NEER의 중심점·변동폭은 지난해 10월 수준을 유지해 기존의 '완만'하고 '점진적'인 통화절상 정책의 일관성을 이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싱가포르의 기습 조치로 수출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 간 통화 평가절하 경쟁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린 유럽중앙은행(ECB)의 최근 양적완화(QE) 발표 전후로 캐나다·덴마크·인도·일본·태국 등의 중앙은행들이 줄줄이 금리 인하 등을 통해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렸다. MAS도 성명에서 "달러 강세에 따른 싱가포르달러의 평가절하 효과가 말레이시아 링깃화, 유로화, 일본 엔화 약세로 상쇄됐다"며 타국의 통화정책 실태를 완곡하게 꼬집었다.
싱가포르가 통화전쟁 확전 우려에도 불구하고 깜짝 통화완화를 단행한 것은 저유가, 주택 값 폭락, 의료복지 확대에 따른 물가하락으로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MAS는 성명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전망치를 지난해 10월 발표 당시보다 1%포인트 하향 조정(0.5~1.5%→-0.5~0.5%)했다. 특히 "국제유가는 뚜렷하게 반등할 것 같지 않고 지난해 평균치인 배럴당 93달러보다 훨씬 낮게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집값도 신규 주택 공급량 등의 증가가 물가압력을 꺾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