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의 '창의 시정'이 공직사회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공무원들이 낸 아이디어가 행정의 질을 향상시키고 시민의 행복지수를 높이고 있다는 평가다. 사진은 공무원의 제안으로 실현된 반포대교 달빛 무지개분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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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개최하는 '천만상상 오아시스 실현회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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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7월 찌는 듯한 무더운 여름 어느 날 당시 토목 7급 공무원이던 윤석빈(42)씨는 잠수교를 지나고 있었다. 순간 "반포대교에서 폭포 같은 물이 떨어지면 잠수교를 지나는 시민들이 얼마나 시원하게 느낄까"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윤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폭포에 잠긴 잠수교'란 제목으로 생각을 정리해 시 직원 아이디어 제안 창구인 '상상뱅크'에 제출했다.
지난해 말 세계 기네스 협회에 '세계에서 가장 긴 교량분수'로 등재된 반포대교 '달빛 무지개분수'는 이처럼 한 공무원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돼 '1,000만 시민의 멋진 선물'로 탄생했다. 덕분에 윤 씨는 지난해 10월 1계급 특별 승진했다. 7급에서 6급으로 승진하는데 평균 10년 10개월 걸리는데 7년 1개월 만에 '초고속 승진'한 것이다. 윤 씨는 "공무원의 꿈은 승진인데 제 특진이 동료들에게 '나도 해보고 싶다'는 의욕을 불어넣은 것 같다"며 "창의 아이디어가 시정 곳곳에 스며들면 행정의 질이 향상되고 시민의 행복지수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선 4기 출범 직후부터 시작된 '창의 시정'이 공직 사회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공무원 사회를빗댄 '복지부동' '무사안일'이란 말은 이제 옛말이 됐다. 취임 후 줄곧 '창의(創意)' 를 강조해 온 오세훈 시장은 연초 신년사에서도 "시민 고객 한 분 한 분이 피부로 느끼는 수준으로 행정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이 바로 '창의 시정'의 결실"이라며 "올해를 '창의시정 결실의 해' 로 만들자"고 역설했다. 단순히 "여성 화장실이 부족하다"는 인식에 머물 것이 아니라 "화장실 이용 방법ㆍ평균 시간 등 실질적 측면을 고려해 여성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게 창의시정의 핵심인 '시민 중심 사고'라는 철학이다.
창의시정은 지난 3년간 공무원과 공직사회에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은 변화를 가져왔다. 공무원 창의제안 창구인 '상상뱅크'에 제출된 아이디어만 17만 여건. 1997~2006년 4,600여 건에 비하면 40배 가까운 폭발적인 증가세다. 달빛 무지개분수를 포함해 한강 줄타기 행사, 재활ㆍ자립에 초점을 둔 복지정책인 '희망드림 프로젝트' 등이 상상뱅크를 거쳐 정책으로 실현됐다.
시민들의 참여 통로인 창의제안 창구 '천만 상상 오아시스' 참여도 활발해 졌다. 한 달 평균 1,233건 4만7,000여 건의 제안이 접수됐고 ▦광진교 걷고 싶은 다리 ▦전업주부 건강검진 서비스 ▦다산 콜센터 수화통역서비스 등 116건의 아이디어가 정책에 반영됐다.
시는 또 매 월 고객감동 창의경영 발표회(투자ㆍ출연 기관), 고객감동 창의 발표회(산하 사업소)를 개최하고 대학 등 '찾아가는 천만상상 오아시스'를 열어 창의시정 저변 확대에 나서는 한편 가시적인 성과를 보인 공무원이나 동아리에는 창의상ㆍ성과포인트 제공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동기 부여를 하고 있다.
공무원 조직문화와 체질 변화를 불러 온 창의시정에 대한 효과는 객관적으로도 검증됐다. 지난 8월 미국 시라큐스 대학이 발표한 '서울시 공무원 리서치'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절반 이상의 공무원이 연공 서열보도 실적이 중요하다고 답했고 60% 이상은 창의시정 이후 보다 개방적이고 창조적인 조직으로 변했다고 말해 공무원의 생각과 태도가 '시민 만족'과 '업무 지향 중심'으로 무게를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
창의시정의 결실은 국제 사회의 인정으로도 이어졌다. 지난 6월23~24일 미국 뉴욕 UN 본부에서 열린 '2009 UN 공공행정상'에서 '천만 상상 오아시스'가 정책과정 시민참여 촉진분야 우수상을 수상한 것. 유엔공공행정네트워크(UNPAN)가 주관하는 'UN 공공행정상'은 전세계 공공행정 사례 가운데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례를 선정해 시상하는 공공행정분야 최고 권위의 상으로 불린다. 또 코넬대ㆍ조지아대ㆍ뉴욕 주립대 등 미국 14개 행정대학원 교수진은 창의시정 교과목 개설을 추진 중이다.
여장권 창의담당관은 " '창의시정' 핵심은 시민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라며 "시민들의 목소리를 불만이나 민원(Noise)으로 여긴 것이 관행이었다면 이제는 정책적 요구로 파악하는 신호(Signal)로 인식하는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