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부다페스트 난민촌


2003년 개봉된 미국 영화 '언더월드'는 모두 4편이 만들어질 만큼 인기였다. 이 영화를 보면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지하철역에서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뉴욕에 다녀온 영화팬이라면 촬영장소가 뉴욕 지하철일 거라는 생각을 할 법하다. 낯이 익기 때문이다. 뉴욕 지하철은 수많은 영화의 배경이 됐던 만큼 그렇게 추론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싶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언더월드'에 등장한 무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지하철역이다. 뉴욕 지하철 입구가 바로 부다페스트 지하철을 모델로 만들어져 두 곳이 닮은꼴이라고 한다. 유럽 내륙에 위치한 헝가리는 지리적 영향 때문인지 지하철이 발달해왔다. 역사로만 따지만 '지하철 선진국'이다. 수도 부다페스트에 지하철이 개통된 시기가 1896년. 유럽 대륙 최초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다.

건국 1,000년을 기념해 황제의 이름을 딴 '지하철 프란츠 요제프'를 운행한 것. 이 노선은 '밀리엄 언더그라운드'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1호선'이 자연스럽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부다페스트 지하철 역사가 요즘 시리아 등 중동에서 몰려든 난민들로 북새통이다. 동부 켈레티역 등의 역사 앞에 수천명의 난민이 텐트를 치고 노숙하며 경찰과 대치 중이라는 외신 보도다. 2일 헝가리 정부가 부다페스트 중앙역을 폐쇄하고 서유럽으로 가는 열차 운행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내전·가난을 피해 탈출한 난민들은 그리스·이탈리아에 도착한 뒤 헝가리·마케도니아 등을 거쳐 독일·프랑스·영국 등에 정착하려 한다. '그렉시트' 악몽을 겨우 잠재운 유로존이 이제는 난민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독일과 영국은 '난민 쿼터제'를 두고 외교마찰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모든 난민을 받아들이겠다"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자국 반이민 세력에게 '배신자' 소리까지 듣는 모양이다. 유럽 각국의 셈법 사이에 끼어 난민들만 오도 가도 못하게 된 모양새다.

경제침체 탓에 난민을 마냥 수용할 수 없는 유로존의 고민이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자유를 찾아 나선 난민을 내칠 수도 없지 않은가.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임석훈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