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때문에…" 불황형 가격담합 기승

지방 중심 렌트카·전세버스 업계등 만연화
과징금 적게 내려는 자신신고도 자취 감춰
공정위 내달 닭고기업체 담합 허용여부 심의에 주목


조류 인플루엔자(AI), 경기침체 등으로 닭고기 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들 업체가 신청한 가격담합 허용건에 대해 오는 5월 중순께 심의를 열어 승인 여부를 최종 결정한 계획이어서 주목된다. 이에 앞서 하림 등 15개 닭고기 업체들은 원자재 값 상승, 경기불황 등으로 한계에 내몰리면서 지난 3월초 가격담합 승인을 요청했다. 또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이른바 불황형 가격담합도 빠르게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공정위에 따르면 올 들어 레미콘, 유치원, 중개업소, 자동차렌트, 전세버스 운송요금 등 불황형 가격담합이 지방과 중소 업종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예전 같으면 과징금 등을 적게 받으려는 가격담합 자진신고가 적지 않았다”며 “하지만 올 들어서는 생계형(?) 담합이 늘면서 자진신고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 20년 만에 금기 깰까 = 가격담합 허용이 제도화된 것은 1981년. 그 이후 몇 건에 대해 가격담합을 허용했다. 하지만 대부분 산업 합리화 조치 등 정책적 사안에 따라 이뤄진 것이었다. 닭고기 업체처럼 경기불황을 이유로 담합을 승인한 사례는 거의 없었다. 때문에 닭고기 업체에 대해 담합을 허용하면 20년 만에 첫 사례로 기록된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공정위는 현재 닭고기 담합 허용건에 대해 관계기관의 의견수렴 등의 절차를 밟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AI 사태로 닭고기 업체들의 입장이 좀 늦어지고 있다”며 “가능한 한 빨리 처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늦어도 5월 중순에는 전원회의를 열어 담합 여부를 최종 판결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닭고기 담합 처리건이 다른 업계에도 큰 파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공정위가 담합을 승인하면 경기불황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다른 업계 역시 잇따라 담합을 공식적으로 요청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퍼지는 불황형 가격담합 = 이런 가운데 올 들어 불황형 가격담합은 이미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공정위는 최근 제주도 자동차 대여사업 조합에 대해 가격담합을 이유로 2,000만원의 과징금 부과 결정을 내렸다. 관광객 감소 등으로 수익이 떨어진 제주도 렌트카 업체들이 조합을 주축으로 요금 할인율을 50% 이하로 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담합 원인은 불황 때문이었다”며 “고심 끝에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원자재 값 인상으로 신음하는 레미콘 업계의 경우 담합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제주ㆍ광주 지역에서 담합이 드러난 데 이어 최근에는 청주ㆍ청원ㆍ서산ㆍ태안지역 등에서 카르텔 행위가 적발됐다. 유치원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인천ㆍ부산ㆍ울산 등 3개 유치원연합회가 소속 회원사 608개에 대해 수업료 등 가격 인상을 주도, 공정위로부터 시정조치 명령을 받았다. 아울러 부산ㆍ경남 양돈협동조합도 돈 지방 경쟁입찰에서 가격을 담합해 시정명령을 받았고 울산지역 6개 전세버스 운송사업자들도 담합해 운송요금을 인상, 1억6,4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부산의 치기공사협회, 엘피가스공업협회 부산지회 등도 불법으로 함께 가격을 인상, 각각 2,400만원과 4,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는 등 중소 업종을 중심으로 카르텔이 만연화되고 있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경기가 나빠질수록 중소업체 및 단체를 중심으로 불황형 담합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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