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장비 업체 A사는 지난해 중요한 기술이 유출될 뻔한 경험을 한 후 올들어 서둘러 보안시스템을 구축했다. 여유 자금이 있으면 기술개발에 우선적으로 투입해 왔지만 ‘기술을 개발하는 것 못지않게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정부의 보조금에 회사 자금을 더해 정보보안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A사처럼 중소기업으로서 정보보안 시스템을 도입한 곳은 아직까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 중소기업의 경우 정보 및 기술보안에 대한 인식이 낮을 뿐더러 자금도 넉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최근 들어 중소기업들이 정보 보안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지만 예산이나 전문가 부족으로 아직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중기 보안 대책은 걸음마 수준=중소기업청 산하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기정원)은 현재 중소기업들의 정보보안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기정원은 주로 중소기업이 보유한 핵심기술이나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보안시스템 지원 및 교육사업을 진행중이다. 정부 차원에서 중소기업의 정보보안을 지원하기 위한 논의는 지난 2004년부터 시작됐다.정부가 지난해 3월 ‘중소기업 기술유출 방지사업계획안’을 확정하면서부터 본격화됐다. 사람으로 따지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셈이다. 기정원은 중소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산업보안의식을 제고하는데 힘쓰고 있다. 순회교육과 세미나를 진행하는 한편 중소기업들이 보안시스템을 구축할 때 보조금을 지원해준다. 중소기업이 보안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사업비의 70%(최대 1,500만원)를 지원한다. ◇보안 지원 예산 한 해에 5억원=정부는 지난해부터 50여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정보보안시스템 구축지원사업을 진행중이다. 올해의 경우 정보 보안 진단 및 시스템 구축 지원 사업을 통합해 약 24개사가 혜택을 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국내 중소기업은 모두 300만개에 달한다. 하지만 중소기업 보안지원 사업 예산은 지난해 4억2,000만원에 불과했다. 올해도 5억원으로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전체 중소기업을 감안하면 ‘새 발의 피’나 다름없다. 중소기업들도 최근에는 인건비 부담 등으로 중국 등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해외 현지 기업 입장에서는 국내 중소기업들의 기술을 빼내기가 한층 더 수월해졌다. 해외로 진출한 중소기업들이 지적재산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 만큼 이를 지원하기 위한 예산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정원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기술유출 방지와 관련된 정부차원의 ‘큰 그림’이 필요한 상황이나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재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면서 “중소기업의 산업보안 활동을 지원하려면 최소한 관련 예산이 50억원 이상으로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기업의 공조 및 전문가 육성 시급=중소기업의 기술유출방지 시스템 사업을 벌일 때 일본은 훌륭한 벤치마킹 사례가 될 수 있다. 일본은 고이즈미 총리가 위원장으로 참여하는 ‘지식재산보호센터’를 통해 기업의 정보보안을 적극적으로 지원중이다. 특히 변호사협회와 변리사협회가 공조해 중소기업의 기술유출 방지 노력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정부-유관 협회-기업’의 삼각편대를 통한 보안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일본은 어릴 때부터 교육을 통해 ‘기술 유출은 범죄’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심지어 유치원에서도 지적재산권이나 기술보호의 필요성을 교육하기도 한다. 반면 우리의 경우 이런 교육은커녕 산업보안 전문가조차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산업보안 교육 프로그램은 대학원 과정에서나 도입돼 있을 정도다. 따라서 기업들이 보안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로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