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마스터키

기관사가 소임을 다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최소한 마스터 키(정확히는 마스터 컨트롤 키)만 빼지 않았어도 고귀한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기관사든, 상황실이든 화마(火魔)에 휩싸인 승객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실종된 마스터 키는 승객들을 화염과 매연 속에 가둔 자물통의 열쇠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린 2003년2월25일은 상서로운 날이다. 그럼에도 아픈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대구지하철의 기관사와 대통령은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마스터 키를 지녔다는 점이다. 대통령은 국가 운영의 마스터 키를 갖고 있다. 취임식이 열리는 날, 감히 국가원수와 피의자를 비교하는 `불경`을 저지르는 이유는 대통령의 책무가 그만큼 막중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 혼신을 다해 국정에 충실하리라 믿는다. 하지만 새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나 많다. 북핵을 둘러싼 국제간 이해조정과 경제회복, 국민통합, 지역균형발전…. 모두가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 소설가 박순원이 읊었던 `노무현과 시지프스`가 떠오른다. 시지프스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 산꼭대기에 올려놓으면 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밀어올려야 하는 형벌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편한 길을 마다하고 지역감정에 정면으로 맞서며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당시 노무현 후보를 보며 소설가는 `시지프스의 형극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대선 새벽 인터넷에 오른 그의 글은 수많은 네티즌을 감동시켰다. 국민의 기원대로 `낙선`이라는 시지프스의 형극은 끝났다. 오늘의 취임식이 그 결과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짊어지고 산에 올라야 할 돌덩이는 무수히 많이 남아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는 전초전이었는지도 모른다. 본 게임의 성패는 대통령 자신의 것이 아니다. 온 나라와 국민, 한민족 전체의 미래가 그에게 달렸다. 지난 90년 옛날 마포 민주당사에서 3당합당 결의를 위한 옛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홀로 `이의 있습니다`라며 발언권을 요구하던 노무현 당시 초선의원의 결의에 찬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그가 대통령이 됐다. 기쁜 날이다. 대통령이 초심을 잊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통령의 손에 들린 마스터 키가 국민을 편하게 만드는 열쇠가 되리라 믿는다. <권홍우(경제부 차장) 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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