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진단] 내치는 잠잠해졌는데… 정치인 칼춤에 휘둘리는 금융당국

■ 다시 부는 정치금융 바람
금융CEO 인사 구도 그려 놓고도 실세 정치인 입김… 막판에 뒤집혀
대·중기 담보대출 금리차 시정 등 시장논리 무시한 정치금융 판쳐
우리금융민영화 과정서 심화 우려

신제윤(가운데)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취임후처음으로 금융지주회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활짝 웃는 모습으로 사진촬영에 응하고 있다. 이순우(왼쪽부터) 우리금융회장, 홍기택 KDB산은금융 회장, 한동우 신한금융 회장, 어윤대 KB금융 회장, 신위원장,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박병원 은행연합회장, 신충식 농협은행장. /서울경제DB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3월 초 임명 직후 서울경제신문과의 첫 인터뷰에서 "관치(官治)가 없으면 정치(政治), 정치가 없으면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의 내치(內治)가 된다"며 금융계의 현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의 내치"란 지난 정부 때 친MB 인사로 위세를 누렸던 금융지주 회장들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다. 신 금융위장 취임 이후 이런 상황은 바뀌었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14일 물러났고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도 다음달이면 떠난다. 내치가 사라진 셈이다.

하지만 금융계의 현실은 다시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내치가 없어진 자리에 정치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금융사의 건전성과 수익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어느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방파제를 쌓아야 할 금융감독당국이 먼저 정치금융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감독당국이 정치권 등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다 보니 투박한 관치로 나타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치 입김에 휘둘리는 금융 CEO 인사=금융계 인사들은 이명박 정권 당시 금융권의 가장 큰 문제로 인사를 꼽았다. 이른바 대통령 측근인사들이 인사권을 남용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학연과 지연에 따라 인사가 이뤄지면서 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한 상부 금융계 인사가 계속해서 왜곡된 흐름으로 나타났다.

현 정권에서는 그 같은 모습은 사라졌다. '보이는 손(실세)'이 많이 사라졌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손(정치인)'이 인사를 막후에서 조정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인사 구도 자체가 바뀌는 모습이 곳곳에서 엿보이고 있다.

한 대형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인선의 경우 당초 인사 구도가 언론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자 여당의 실세 정치인 등과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하면서 막판에 바뀌는 상황이 빚어졌다.

다른 대형 금융회사 인선의 경우에도 여당 실세 인사가 인선에 깊숙하게 관여하면서 구도 자체가 완벽하게 바뀌었다.

김영선 전 국회의원의 내정설로 파행을 겪었던 한국거래소 이사장 공모작업 역시 정치권이 금융에 연을 대면서 발생한 촌극이었다.

BS금융 사태 역시 금감원이 외풍에 흔들린 사건이다. 금감원은 "장기집권 CEO의 문제가 심각해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대구경북(TK) 지역의 특정 인물을 앉히기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얘기가 끊임없이 나돈다. 정치권의 '요청(?)'에 의해 금감원이 무리하게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시장 논리 벗어난 정치금융=요즘 금감원은 국회 정무위원회 '뒷바라지'에 바쁘다. 새누리당이 지난 11일 야심차게 발표한 '대ㆍ중기 담보대출 금리차 시정' 문제는 '금융의 정치화'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최수현 금감원장은 4월8일 담보가 똑같이 있는데 은행들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금리를 차별한다며 이를 시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우 담보가 똑같이 있더라도 실행가능성의 차이 때문에 금리가 다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부도를 맞을 확률이 커 담보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문제는 금감원의 경우 금융사의 건전성을 감독하는 게 제1 업무라는 점이다. 이 부분의 최초 발상을 누가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금감원 내부에서조차 담보대출의 금리 차별을 놓고 심하게 격론이 벌어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 스스로도 시장 논리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회의론이 있었던 셈이다.

정치금융은 아니지만 수수료나 저축은행 관련 발언들도 투박한 관치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영제 금감원 부원장은 13일 "금감원이 지난해부터 수수료에 관여를 많이 했다"며 "수수료나 금리는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조 부원장은 "다만 그 전제는 시장경제 원리가 작동해야 하고 그러려면 가격기구가 작동해야 하는데 현재는 아니다"라고 했다. 정치권의 요구가 거센 수수료와 금리 문제에 금감원이 직접 개입하겠다는 의미다.

조 부원장은 또 "저축은행은 소유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며 "독일의 경우는 지방자치단체가 대주주"라고 말했다. 저축은행을 모두 국유화해야 한다는 주장으로도 들린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치금융'이 앞으로 전개될 우리금융 민영화 과정에서 더욱 심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광주ㆍ경남은행 매각을 놓고 벌써부터 지역에서는 상공회의소 등을 중심으로 당국에 강한 압박을 넣고 있다. 당국은 어떻게 해서든 팔겠다고 하지만 지금처럼 정치금융에 흔들릴 경우 배(매각작업)가 산으로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