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강경투쟁 노선과 국내에서 국가재건을 준비한 온건 노선이 절묘하게 역할 분담을 한 덕에 광복 후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었지요. 같은 관점에서 광복 70년 동안 진보와 보수 진영도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이루는 데 제 몫을 다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홍일식(79·사진) 한국인문사회연구원 이사장(전 고려대 총장)은 최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우당역사문화강좌 '나의조국, 대한민국' 강연에서 광복 후 국가발전의 토대가 한국인의 역할분담과 역량결집에 있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우당(友堂)은 1910년 일제 강제병합 후 전 재산을 정리하고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펼치다 일제에 체포돼 고문사한 이회영 선생(1867~1932)의 호다. 현재 우당기념관장을 맡고 있는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손자다.
홍 이사장은 "일제 강점기를 치욕, 암흑의 시대로 묘사하지만 오히려 역사학·한국학적 관점에서 보면 자랑스러운 저항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에서 무력항쟁에 나섰던 독립투사의 공이 지대하지만 국내에서 일제 탄압을 참고 견디며 교육·산업 등 각 분야에서 힘을 길렀던 종사자들의 노력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이 두 역량의 축적이 광복 후 대한민국을 초고속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조선인들의 친일행위에 대한 비판과 관련해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행했던 일제 협력을 또 다른 심사원려(深思遠慮·깊이 생각하고 멀리 고려함)의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며 "무조건 친일로 매도하기 전에 그 인물에 대해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홍 이사장은 일제 강점기에도 민족성을 잃지 않고 역사적 변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인을 보편적 가치를 적극 수용하는 우리 민족의 적응력에서 찾았다. 불교가 삼국시대부터 무려 1,020년 동안이나 국교로 숭상 받았지만 조선 건국으로 재빠르게 유교에 자리를 내주고 근대 들어 기독교가 큰 저항 없이 유입되는 등 다른 나라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급속한 이데올로기 전환은 전 세계 보편주의를 생존 수단으로 빨리 받아들이는 민족적 체질 때문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도덕적 정당성과 논리 합리성을 갖춘 문민(文民)통치의 전통도 일제 강점기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역할 분담을 하도록 한 동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홍 이사장은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라며 축적된 역량을 적소에 집중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근현대사에서 군사→경제→기술주권의 시대를 거쳐 앞으로 문화주권의 시대가 올 것"이라며 "20~30년 후를 내다보고 우리 젊은이들이 나서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보화 시대에서 인간성 상실과 고독의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사상을 내놔야 한다"며 "사회 평등, 자본의 효용성에 인본주의의 핵심인 우리의 효(孝)를 접목시킨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