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9월 3일] IPTV, 기술만 좇을 것인가

“(IPTV 사용법이) 너무 복잡해 겁이 난다. 지나친 속도경쟁과 다양성은 현기증 나게 한다. ” 얼마 전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인터넷TV(IPTV) 시연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다양한 양방향 서비스를 참관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직접 해보려니 사용법이 매우 까다로워 계속 실패를 거듭하자 한 이야기라고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방송과 통신의 경계벽이 허물어진 방송통신융합 시대, 디지털케이블TV와 IPTV 등 다양한 뉴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컨버전스(Convergenceㆍ융합)라는 이름 아래 공문서 발급에서부터 TV 화면을 통한 상품 구매, 인터넷 검색, TV 화면을 통한 은행 업무(T-banking) 등 다양한 양방향 서비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여기에 방송사가 편성한 시간에 정해진 프로그램을 시청해야 했던 기존 방송 시청의 행태에서 벗어나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는 ‘방송의 신천지’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에 대한 배려는 어디쯤 가 있을까. ‘첨단과 최신’이라는 미사여구 속에 갇혀 어느새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아닌지 뒤돌아볼 때다. 앞서 언급한 “복잡해 겁이 난다”는 한 마디는 신기술과 서비스의 다양성만을 중요시하는 서비스 공급자들의 수준을 고객의 입장에서 대표적으로 표현한 고언(苦言)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케이블방송 ‘헬로TV’를 운용하고 있는 CJ헬로비전은 지난 2005년 출시 이후 ‘T커머스’와 ‘TV노래방’ ‘인터넷 검색’ ‘TV 피자 배달 서비스’ 등 20여가지에 달하는 각종 양방향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해왔다. 오늘날에 와서 IPTV 사업자들이 개발해냈다고 자랑하는 서비스들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서비스들이 현재까지 고객들에게 제공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공급자 입장에서 자랑스러운 이러한 서비스들은 고객에게 일부 외면당하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다. “최첨단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왜 이렇게 호응이 없을까.” 고민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TV 화면을 통해 피자 배달이나 주민등록 등ㆍ초본을 떼는 일이 가능해졌지만 전화 한 통화나 인터넷 클릭 몇 번으로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TV 전원을 켜서 해결하려는 고객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CJ헬로비전은 ‘최종적으로 서비스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고객’이라는 평범하면서도 값진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오늘날 4방향키로 모든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리모컨 개발에서부터 고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다양한 양방향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데는 ‘기술보다 고객’이라는 교훈이 밑거름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IPTV가 ‘방통융합시대의 아이콘’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시장에 출현한 후 관련 사업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양방향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IPTV 사업자들의 행태를 들여다보면 몇 년전 CJ헬로비전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가 든다. 지금부터라도 ‘최신’과 ‘첨단’이라는 개념에 함몰돼 있기 보다는 ‘과연 고객의 수요를 만족시켜주는지’를 먼저 헤아려봐야 하지 않을까. 각종 기능들이 하나로 결합된 ‘컨버전스’는 고객에게 편리함을 줄 때만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고객에 대한 배려가 없는, 그래서 부담만 안기는 컨버전스는 결국 고객의 차가운 외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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