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외무의 퇴진/김인영 뉴욕 특파원(기자의 눈)

7일(현지시간)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재선을 축하하는 기념행사가 백악관에서 열렸다. 연단에 올라선 클린턴 대통령은 옆에 서 있는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을 청중들에게 소개했다.『크리스토퍼의 사의를 깊은 감사와 슬픔 속에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오늘 중동의 어린이들이 화해의 미래를 생각하고, 보스니아의 살상이 종식된 것과 아이티에 민주주의가 되살아난 것은 바로 크리스토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미국과 세계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클린턴은 자신보다 21살이나 연상인 국무장관을 「선배 정치인」이라고 호칭하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앨 고어 부통령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유엔대사, 크리스토퍼의 부인도 그의 은퇴 자리에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 재선을 축하하는 행사는 국무장관의 은퇴를 아쉬워하는 행사로 변해 버렸다.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비판적인 미국 언론들도 「조용히 설득하는 외교관」이니, 「정력적인 국무장관」이니 하는 미사여구를 쓰면서 71세 노정객의 은퇴를 보도했다. 북한 핵동결, 보스니아 전쟁, 팔레스타인 사태 등 국제분쟁의 해결사를 자처했던 그의 은퇴 발표는 미국인들의 축복과 영광을 한몸에 받으며 이뤄졌다. 크리스토퍼는 지난 10월 중순 뉴욕에서 한국의 공로명 외무장관을 만나 북한 잠수함 침입사건에 대한 대책을 의논하면서 한미공조를 약속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두 외무장관은 한달후 비슷한 시기에 사의를 밝혔다. 공 전장관도 한·소수교, 북한 핵동결 등을 주도, 크리스토퍼 만큼이나 한국 외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외교관임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김영삼 대통령도 외교지평을 넓히고 국익을 높이는데 기여한 그의 공로를 치하했다. 그러나 그의 사퇴를 둘러싸고 인민군 복무설이니, 부처간 알력의 소산이니 하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축복과 영광 속에 은퇴하는 미국무장관과 비교하면 한국 외무장관의 은퇴는 너무나 씁쓸하고 왜소해 보인다. 크리스토퍼는 언젠가 『외교는 역사의 경주에 참가하는 것이고, 진보를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개운치 않은 공장관의 퇴진은 한국 외교의 미숙함과 후진성을 반증하는 것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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