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의 백4는 우변의 흑대마더러 어서 까불지 말고 살아두라는 위협이었다. 콩지에는 군말없이 흑5로 궁도를 넓히고 흑7, 9의 수순으로 대마를 살렸다. 백10은 백의 권리. 이것으로 우변에서 상변에 걸쳐 제법 많은 백의 집이 생겼다. “이 정도면 계가바둑이지요?”(루이 9단) “어림도 없어요. 반면으로 흑이 10집 이상 남아요.”(서봉수 9단) 흑15로 시커먼 말뚝을 박자 좌변쪽은 모두 흑집으로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백16은 일단 반상최대의 끝내기지만 흑17을 얻어맞아 백의 패색은 한층 더 짙어졌다. 백38은 어떻게든 시비를 걸어 보겠다는 수였는데 이때 콩지에는 초읽기에 몰려 있었다. 초읽기를 국제 기전이므로 영어로 읽었다. “라스트 원 미니트. 라스트 텐 세컨드. 원, 투, 스리, 포….” 초읽기에 몰리면 기묘한 흥분 상태가 된다. 게다가 상대방은 계속 이빨을 사려물고 시비를 걸어오고 있다. 백40을 보고 잠시 망설이는 콩지에의 귀에 초읽기가 촉박하게 들렸다. “파이브, 식스, 세븐….” 얼른 흑41로 몰았는데 이 수가 패착이었다. 이 수로는 참고도의 흑1로 가만히 살아두는 것이 최선이었다. 백은 2로 막아두는 정도인데 흑3 이하 7로 10급짜리 초심자처럼 끝내기를 했더라면 흑이 10집은 족히 남기는 바둑이었다. 백42를 보자 서봉수 9단 뒤에 서서 검토 상황을 구경하던 시인 박해진씨가 말했다. “흐흐흐. 바둑판 위에 기름을 확 부어 버렸구나. 콩쥐가 허방에 삽질을 했어.” 둘러섰던 구경꾼들이 까르르 웃었다. 콩지에는 전래동화 콩쥐팥쥐의 콩쥐와 이름이 흡사하다. 중국 출신인 루이 9단은 말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얼굴로 그냥 따라 웃었다. 노승일ㆍ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