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tSectionName(); [盧 서거] 빈농 아들서 대통령까지··· '영욕의 63년' 스스로 마감 지역주의 타파 '바보 정치인'재임시절 탄핵 등 파란만장퇴임후 낙향 농촌운동 의욕도덕성 상처에 극단적 선택 권대경 기자 kwon@sed.co.kr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해 인권변호사로 지난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노무현. 정치권 입문 뒤 지역주의 타파를 내세워 '바보 노무현'이라 불렸던 그는 대한민국 비주류의 상징으로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대통령 퇴임 뒤 '가난의 끈을 끊자'고 다짐했던 고향마을의 뒷산 바위에서 23일 63세의 일기로 '세상과의 끈'을 놓아버린 노 전 대통령. 그의 삶은 대한민국 민주화, 한국 현대 정치사의 격변과 함께 한 한편의 드라마였다. ◇'집념의 승부사'…가난한 청년에서 대통령까지=노 전 대통령은 1946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가난 때문에 대학 진학의 꿈을 접었지만 서른에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판사 생활 7개월 만에 변호사로 전업한 노 전 대통령은 1981년 시국사건인 '부림사건' 변론을 맡은 뒤 1987년 9월 최루탄을 맞아 사망한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 사건을 계기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이씨의 사인 규명에 나선 그를 당시 김영삼(YS) 통일민주당 총재가 눈여겨봤고 김 총재의 권유로 1988년 13대 총선에 출마, 제도권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이후 정치인 노무현의 삶은 평탄치 못했다. 그는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해 YS와 결별하고 지역주의에 맞서 싸우는 길을 걸었으며 영남 출신임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한 그의 '소신'은 수많은 좌절을 안김과 동시에 대통령이 되는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됐다. 1998년 보궐선거 때 서울 종로에서 금배지를 달았지만 2000년 총선에서는 부산에서 당시 허태열 한나라당 후보에 패배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쳐 지역주의에 염증을 느끼던 유권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선에 도전했으며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중심으로 하는 단단한 지지세력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노풍(盧風)'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됐다. 비록 16대 대선 전날 새벽 정몽준 국민통합 21 대표가 후보단일화를 철회해 위기를 맞았으나 이마저 정면돌파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탄핵'에서 '남북정상회담'…영욕의 재임기간=대통령 노무현의 정치 역정은 헌정 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계속 붙는 그야말로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2004년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이 여소야대 구도에서 열린우리당 지지발언 등 선거법 위반 혐의를 걸어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가결했다. 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은 그해 3월12일부터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기각한 5월14일까지 63일 동안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모든 분야에서 언제나 '새로운 정치'를 추구했던 그의 끊임없는 시도는 때로는 극찬을 받기도 했고 또 때로는 민심이반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귀향 대통령…도덕성 치명타로 극단적 '선택'=노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낙향한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뒤 봉하마을 주변 하천에서 직접 쓰레기를 줍고 습지 환경 정화활동을 벌이며 농촌 운동에 의욕을 보였다. 자전거를 타고 촌로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마을 어귀 가게에서 함께 담배를 물고, 논밭에서 땀을 흘리던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감명을 주며 한때 퇴임 전보다 퇴임 후 인기가 더 오른 대통령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행복도 잠시. '박연차 게이트'는 노 전 대통령 자신의 정체성이나 다름없었던 도덕성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그를 '사지(死地)'로 몰았다. 피의자 신분으로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대통령으로는 세 번째로 4월30일 검찰에 출석했던 노 전대통령은 심리적 압박과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함으로써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는 말을 남기고. 盧 전 대통령 영정 본 분양소로 이동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째인 24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마련된 임시분향소에서 盧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이 본 분향소로 옮겨졌다. 한명숙,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영정을 앞에서 들고 뒤로 아들 건호 씨와 가족들이 따랐다./ 김해= 한국아이닷컴 고광홍기자 kkh@hankooki.com kkh@hankooki.com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