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3월30일] '헬리콥터 머니'의 명암

급속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미국의 대응 정도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그동안 미국은 정책금리를 거의 제로 수준까지 내렸다. 하지만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급기야 통화를 직접 공급하는 정책까지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조 달러가 넘는 자금을 마련해 3,000억달러 규모의 10~20년물 장기국채를 포함한 각종 채권을 매입할 방침을 밝혔다. 이는 벤 버냉키 FRB의장의 지론인 ‘헬리콥터 머니론’을 현실경제에 적용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버냉키는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 달러를 시장에 살포하면 극심한 불황에서 탈출할 수 있으리라는 소신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경제 불안정성 증폭 우려
대량의 자금 공급은 미국 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하고 이를 통해 미국 실물경기가 살아나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달러 공급 확대로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 미국의 수출 경쟁력이 살아나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경상수지 적자를 해소하는 데도 유익하다. 미국의 경기 회복은 세계 경제에도 희망을 준다. 하지만 헬리콥터 머니는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킬 가능성도 큰 것으로 우려된다. 제일 먼저 제기되는 불안요인은 세계적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지는 점이다. 일단 미국 물가가 불안해진다. 통화 공급이 늘어나는 데다 달러화 가치마저 떨어져 수입물가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이는 저금리로 보완된 미국 가계의 소비여력을 상쇄시켜 미국의 경기회복에 걸림돌이 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동안 하향 안정화되던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름세로 반전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달러화 가치 하락은 달러화 자산에 대한 투자가치도 동반해서 떨어뜨린다. 그 결과 미국 자산에 투자했던 투기자본들이 다시금 국제상품 시장으로 환류하면 국제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리게 되는 것이다. 최근 금값이 천정부지로 폭등하는 가운데 국제 유가도 상승세로 반전될 조짐을 보이는 것은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해 준다.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등은 세계 경기 회복에 또다시 찬물을 끼얹게 된다. 달러화 가치 추락이 초래할 또 다른 걱정은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우선 국가들 간에 자국의 통화가치를 낮추려는 통화전쟁이 본격화될 수 있다. 이의 선봉은 미국 국채를 세계에서 제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중국이다. 중국은 이미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화를 대체할 ‘슈퍼 통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미국에 선전포고했다. 미국 통화가치 급락에 의해 초래될 경제적 재앙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엔고 불황에 시달리는 일본도 하루속히 엔화 가치를 낮추어야 하는 상황이고, 경기침체가 깊어지고 있는 유럽 또한 무한정 유로화 강세 현상을 용인하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주요국들이 통화가치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통화 공급 경쟁을 벌이게 된다면 세계적인 인플레 압력은 그만큼 고조된다. 이 과정에서 자국의 금융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금융 보호주의가 확산되면 세계 금융의 경색 현상도 깊어질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의 경기 회복이 지연돼 달러화 가치가 급락, 중국 등이 미국 국채를 대량 매도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경우다. 이는 달러화 가치의 추가 하락으로 이어져 그야말로 달러 중심의 세계 통화체제를 대혼란에 빠뜨리게 만든다. 경제정책 공조체제 강화 필요
세계 실물과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이 증대되면 국내경제도 물가불안과 실물경기 침체 심화, 그리고 환율ㆍ주가가 급등락하는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에 휩싸일 것이다. 예상되는 대내외 여건의 악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외적으로 경제정책의 공조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미국ㆍ일본ㆍ중국 등과 통화스와프 등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보호주의가 확산되지 않도록 국제 여론을 주도하는 역할도 감당해야 한다. 대내적으로는 변화무쌍한 세계정세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국내경제의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