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양'이 하나만 있었어도

“양이 하나만 있었어도….” 며칠 전 서울 마포에 사는 박모(60)씨가 자신의 집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르려다 경찰에 연행된 사건이 있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는 쌍둥이 아들이 전과목에서 ‘가’를 받아 전교생 576명 중 576등과 575등을 한 데 격분,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는 경찰에서 “양이 하나만 있었어도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고 한다. ‘쌍둥이 아빠’의 행동은 본인의 말처럼 “실제 불을 지를 생각 없이 겁만 주려고 했다” 해도 용서받을 수 없다. 현대 사태 서둘러 봉합 '허탈' 하지만 쌍둥이 아빠의 마음만은 이해가 간다. 퍼펙트(?)한 점수를 받고도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고 컴퓨터에만 매달리는 쌍둥이들을 변화시킬 충격 요법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딱하다’는 마음이 앞선다. 요즘 우리 주위에는 이들 쌍둥이처럼 ‘양이 하나만 있어도’ 밉지 않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우선 현대차 노사가 그렇다. 현대차는 지난해부터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판매가 줄어드는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노조의 욕심은 끝이 없다. 평균 연봉이 국내 제조업 생산직의 1.9배(5,500만원)나 되지만 파업은 매년 계속된다. 지난 87년 노조 설립 이후 단 한 해만 빼고 20년 줄파업이다. ‘귀족 노조’의 배부른 투쟁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유기 노조위원장은 “‘귀족 노조’라는 표현은 사회적으로 반감을 일으키기 위한 용어”라며 “(연봉이 많은 것도)현대차 조합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15년이 넘고 주야 교대근무를 해서 노동시간이 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억울하면 좋은 회사 다니라’는 말로 들린다. 사회지도층이 지켜야 할 규범(노블레스 오블리주)이 있듯이 리딩기업도 사회적 책무가 있다. 올해는 특히 시무식장에서 소화기를 뿌리고 사장의 얼굴에 상처까지 낸 사건 이후 많은 사람들이 현대차에서 더 이상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분명한 원칙이 세워지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회사는 파업이 길어지자 이번 파업의 빌미가 된 성과급 50%를 지급하기로 하고 서둘러 사태를 봉합했다. 회사 측은 파국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올해만은 원칙을 지킬 줄 알았던 많은 국민들은 허탈해 하고 있다. 노사 모두 ‘예쁜 구석’을 찾을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도 ‘양’ 하나 없기는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 말고는 꿀릴 게 없다”는 생각이지만 사실은 이와 다르다. 부동산 문제가 전면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지 실업ㆍ교육ㆍ불균형, 그리고 국방ㆍ외교 어느 한 부분이라도 잘하는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지금도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젊음을 소진하고 있으며 사회 생활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좌절부터 경험한다. 급격한 고령화사회로 접어서면서 노인들도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교육제도는 대표적 실패작이라고 볼 수 있다. 늘어나는 사교육비는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출산을 기피하는 국가로 만들었다. 국민도 같은 심정으로 나라 걱정 국방ㆍ외교도 불안하다. 북한은 핵 보유국이 됐는데 이를 해결할 우리의 역량은 너무 모자라다. 또 전통적 맹방인 미국과의 관계는 살얼음판을 걷는 듯하고 중국과 일본의 해빙 무드로 동북아에서 왕따 신세로 전락할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을 대통령이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노 대통령은 얼마 전 입술이 부르트고 몸살이 났다고 한다. 몸살로 ‘아세안+3’ 회의에서는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했다. 본인은 입술이 부르트고 몸살이 나도록 국가를 위해 고심하는데 국민들이 알아주지 않으니 “대통령도 못해먹겠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하다. 딱하다. 지금 국민들은 ‘양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하는 쌍둥이 아빠의 심정으로 나라 걱정을 하고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