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낀’ 시베리아 죽음의 땅 변하나

아마존 밀림과 함께 지구의 양쪽 허파로 불리는 시베리아 삼림이 최근 석유에 대한 인간의 탐욕 때문에 급속히 병들고 있다.러시아 동서로 끝없이 펼쳐진 시베리아 삼림의 수난사는 구 소련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비에트 정권은 열악한 기술로 석유, 천연가스 등 시베리아의 지하자원을 캐내면서 환경 문제를 사실상 도외시했다. 여기에 미국과의 핵무기 경쟁으로 발생한 각종 핵폐기물이 시베리아에 버려지면서 곳곳이 죽음의 땅으로 변해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취임 이후 기승을 부린 무분별한 석유 시추로 상황은 더욱 악화했다. 쇠락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푸틴 정권은 자원 개발에 눈을 돌렸고 자본주의 도입으로 외국 자본까지 앞다퉈 시베리아에 진출했다. 러시아는 환경오염에 대한 벌금제도를 완화하고 외국 석유회사들에 대한 세금까지 낮춰주며 개발을 유도한 반면, 국가환경위원회를 없애는 등 삼림 보호에 대해서는 손을 놓았다. 러시아 국내외 대형 석유회사들은 구 소련 시절 탐사가 중단됐던 곳이나 새로운 지역에 공격적으로 진출, 시베리아 남부 톰스크의 경우 수년 사이 산유량이 배로 늘었다. 이 과정에서 노후 송유관에서의 석유 누출과 이에 따른 화재 위험도 커졌다. 국제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의 2002년 보고서에 따르면 시베리아 지역 원유 시추량의 약 3~7%가 누출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시베리아 지역에서만 7,000~8,400㎢ 가량의 땅이 오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석유사들은 감시가 소홀한 것을 틈타 시추 과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을 몰래 버리고 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국가생태위원회 의장을 지낸 빅토르 다닐로프 다닐리안은 “기업가들은 이제 환경 규정을 준수하는 척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우려는 안타깝게도 현지에서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경제적 혼란 상황으로 인해 지방 정부는 물론, 지역 사회에서도 보존보다는 개발 논리가 득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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