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355억원의 상속세 신고 돋보인다
대한전선 유족 상속세 1,355억 '사상최대' 신고
기업정신 지킨 故人 유지 받들어
지난 3월 타계한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의 유가족이 국내 상속세로는 사상 최대인 1,355억원을 신고한 것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 가진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더 크고 높은 도덕적 의무를 져야 한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실천과 기업ㆍ기업인의 바람직한 역할과 자세를 명쾌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내야 할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세금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현실이 어디 그런가. 많이 가진 사람이든 덜 가진 사람이든, 봉급생활자건 사업을 하는 사람이건 누구나 꺼려 하는 게 세금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회와 방법만 있으면 절세라는 이름으로 가급적 덜 내려 하고 심지어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탈세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상속재산을 정확히 신고하고 거기에 걸 맞는 세금을 내겠다고 하는 것은 돋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회사측은 유족들이 근검절약과 기업인의 본분을 중요하게 여겼던 고인의 뜻을 받들어 세금누락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전한다. 설 회장은 옆에서 보기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근검절약했으며 이는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는 게 회사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특히 그의 경영철학은 눈 여겨 볼 가치가 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기업과 기업인의 기본적인 책무는 수익을 많이 내는 것이며 번 만큼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왔다고 한다.
기업의 존재 근거는 뭐니 뭐니 해도 수익이다. 그래야 일자리도 늘리고 세금도 많이 낼 수 있다. 세금을 많이 내면 국가재정이 튼튼해지고 저소득층 보호 등 사회복지제도도 확충된다. 이것이 본질적 의미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 설 회장은 경영활동을 해오면서, 그리고 세상을 뜨면서도 이를 실천했다고 할 수 있다.
설 회장은 부친으로부터 대한전선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후 타계할 때 까지 40여년간 줄곧 흑자경영을 해왔고 7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으로 성장시켰으니 고용 창출ㆍ납세 등에서 적잖은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유족들이 낼 상속세는 서울 금천구청의 1년 예산보다 50억원이나 많은 돈이다. 금천구 주민이 27만명이고 구 예산은 주민들의 복지와 생활편의에 쓰여진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세금의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이번 설 회장 유족들의 상속세 신고는 우리사회에 퍼져있는 반기업정서 해소에도 적지않은 기여를 할 것이다. 국민들의 기업에 대한 시각이 곱지않은 큰 이유중의 하나가 변칙적ㆍ편법적인 재산의 증여ㆍ상속과 이를 통한 경영권 세습이다. 투명한 경영을 하면서도 돈을 더 많이 벌고, 번 만큼 정확하게 세금을 낸다면 국민들의 기업에 대한 인식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입력시간 : 2004-09-17 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