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 지 오래돼 재건축 될 날 만을 기다리는 아파트. 가끔 아무도 없는 층에 우연히 서는 엘리베이터. 늘 물기가 있어 축축한 느낌을 주는 엘리베이터. 장마철 천정 한 귀퉁이부터 번져가는 얼룩이 결국 구멍뚫린듯이 물이 쏟아진다. 밤이면 빈집이 된 지 오래된 위층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린다. 수돗물에는 머리카락 같은 불순물이 섞여 나온다.
보이진 않지만 그 어떤 존재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고, 혹은 서늘한 느낌이 들 때가 있지 않은가.
`링`으로 색다른 공포를 느끼게 한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신작 `검은 물밑에서`는 `아파트`라는 공간과 `물`이라는 소재를 통해 소외와 무관심이 낳는 현대인의 심리공포를 그려내고 있다. 피 한방울 터지는 장면 없이도 장마철의 눅눅한 습기만으로 관객들을 공포로 몰아 넣는다. 서서히 싸늘하게 심장을 조여오다 한 순간에 소스라치는 공포를 만들어낸다. 공포소설의 대가 스즈키 코지의 단편소설 `부유하는 물`이 원작이다.
요시미(구로키 히토미)는 이혼과 함께 양육권을 어렵게 따내 다섯살의 딸 이쿠코(칸노 리오)와 함께 작은 방이 딸린 낡은 아파트를 새로운 보금자리로 정한다. 그러나 인적도 없고 습기로 가득 찬 아파트가 왠지 심상치 않다. 이쿠코는 갑자기 없어졌다 주인 모를 아동용 빨간 가방을 주워 들고 함께 발견되는 사건이 반복되고 요시미의 눈에는 노란 비옷을 입은 여자아이의 모습이 어른거리기까지 한다.
어느날 이쿠코의 유치원을 찾은 요시미는 환영으로 나타나는 노란 비 옷에 빨간 가방을 맨 소녀의 그림을 발견한다. 소녀는 2년전 실종됐다는 유치원생 가와이 미츠코. 요시미는 자신의 윗집인 405호가 미츠코가 살던 집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영화는 요시미의 외로웠던 어린시절들을 이쿠코와 대비시키며 여기에 실종된 미츠코가 혼자 집을 지키다 옥상 물탱크에 빠진 사건을 연계시킨다. 핵가족화 된 현대 사회의 가족 소외를 공포장르에 접목시킨 수작이다. 21일 개봉.
<김상용기자 kimi@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