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향기] <37> 종묘

한양 천도 이후 이성계는 궁궐과 함께 종묘(宗廟) 건축을 서둘렀다. 종묘는 국왕의 조상들을 모신 사당이다. 전통시대 국가는 국왕 가문의 사유재산이었으니 자동적으로 종묘도 국가 최고사당이 되는 셈이다. 종묘 공사는 1394년 12월 시작돼 이듬해 9월에 끝났다. 종묘 다음으로 사직(社稷)과 궁궐이 완성되고 마지막으로 성벽을 쌓는 순서로 도성 건설이 이뤄졌다. 유학의 이념에 따라 정궁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동쪽)에 종묘를, 오른쪽(서쪽)에 사직을 세웠다. 궁궐이나 왕족·양반들의 생활이라면 호화스러울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 사극에서 요란한 퓨전스타일이 유행하면서 그런 이미지가 더 강해졌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종묘도 건물이 클 뿐이지 단아함 그 자체다. 건축을 포함한 생활 전반에 대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인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 華而不侈)'는 개념을 가장 가깝게 적용한 것이 종묘다.(이 표현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5년(기원전 4년) 기사에 처음 나온다). 사진은 신주를 모신 정전과 그 마당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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