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아베의 '악어의 눈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돌연 변한 것일까.

연이은 극우 행보로 한국과 중국의 역사적 상처를 칼로 후벼 파던 그가 8일 "아베 내각은 아시아 각국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는 과거 내각의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달 "침략의 정의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며 과거 일제의 침략 사실을 부정하는 듯한 망언으로 국제사회의 공분을 사자 사태 진정의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전날에도 아베 총리는 "특정 국가나 민족을 비하하는 시위가 있다는 사실에 매우 유감"이라며 일본에서 벌어지는 반외국인 시위 자제를 촉구한 바 있다.

한국을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일본 언론들은 국내 혐한 여론이 도를 넘어서자 총리가 진화에 나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 한인 밀집지역인 도쿄 신오쿠보와 오사카 등지에서는 최근 들어 연일 혐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오사카에서는 한 남성이 "거리에서 조선인을 보면 돌을 던지자" "한국인 여성은 강간해도 괜찮다"는 과격한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아베 총리는 "일본이 자신감을 잃으면서 다른 국가를 모욕하고 공격적으로 대하는 데서 자신감을 회복하려는 경향은 리더의 잘못이기도 하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과거 일본이 안겨 준 "손해와 고통"을 언급하던 바로 그날, 그는 지금까지 공해상에서의 미국 함선 보호 등 네 가지 제한적 형태로만 행사할 것으로 논의돼온 집단적 자위권의 용인 범위를 새롭게 분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집단적 자위권의 범위를 확대시켜 자위대의 권한을 늘리겠다는 심산이다.

개헌 추진도 멈출 기미가 없다. 9일 일본 중의원은 전쟁포기, 군대보유 금지 등을 명시한 평화헌법 9조 개헌의 사전작업으로서 개헌 발의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헌법 96조 개정논의를 시작한다. 아베 정권의 극우 행진이 계속되는 한 사태를 수습하려는 아베 총리의 발언은 진정성이 결여된 '악어의 눈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지난 3일 헌법기념일을 맞아 일본 언론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상당수는 아베의 개헌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극우주의적 색깔로 일본 국민들을 물들이고 있는 것이'리더의 잘못'은 아닌지 아베 총리는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돌아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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