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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목기의 매력은 무엇보다 그 비례감에 있다 하겠다. 목기 수집이 내 작업에 준 영향이라면 조형적 안목을 넓힐 수 있었다는 점이다. 좋은 목록을 가려낼 줄 아는 안목 덕분에 내 그림을 보고도 스스로 좋고 나쁜 것을 알아낼 수 있게 되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서울시립미술관이 남현동 남서울생활미술관에서 '김종학 컬렉션, 창작의 열쇠'전을 열고 있다. 설악산 풍경도로 유명한 '설악산 화가'인 김종학(78) 화백이 서른 즈음부터 모아온 고가구·목기·석물(돌로 만든 물건)·농기구·민예품 등을 딸인 김현주 큐레이터와 함께 분류하고 정리한 전시다.
먼저 1층 전시장을 채우고 있는 것은 주로 나무 자루에 쇠로 된 머리를 붙인 괭이나 살포(논에 물꼬를 트거나 막던 도구) 같은 농기구, 다락에 올라갈 때 쓰던 간이계단 등이다. 이제는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물건이지만, 1980년대 시골 농가의 마당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을 법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전시 제목처럼 이런 골동품이 그에게는 작품 창작의 원천이 됐다. 바닥에 던져져 있을 때는 그저 농기구지만, 사진에도 보이듯 그의 방식대로 전시하니 무심히 깎은 듯 하지만 분명히 드러나는 조형성과 실용성이 엿보인다. 가을철 벼를 수확한 후 쭉정이나 겨를 날리던 풍구나, 밀가루 반죽을 넣어 국수를 뽑던 국수틀 같은 도구는 그 자체로도 흥미진진하다.
김현주 큐레이터는 "전시를 관람할 때 너무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따지면서 보지 말 것을 제안해 본다"며 "작가가 가장 반기는 어린 관람객의 마음으로, 수집의 재미로 흥이 돋은 작가를 상상해보고 그 흥이 어떻게 작가의 화폭에서 꿈틀거리는지 느껴보시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윗층으로 올라가면 항아리를 뒤집어서 쌓은 듯한 옹기 굴뚝, 초를 넣어 들고 다니던 등, 혼례 때 신부가 준비했던 목안(나무 기러기), 독특한 무늬와 색이 돋보이는 베개·노리개 등 자수작품, 이제 가정집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식기장·문갑 등 고가구가 김 화백의 작품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그가 애호했던 골동품이 작품에 어떤 식으로 드러나는지 확인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전시는 8월 16일까지. (02)598-6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