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는 유럽 정상들이 제시한 '2차 구제금융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민의를 묻겠다고 발표하면서 전유럽에서 가장 인기 없는 사람이 됐다.
파판드레우 총리의 선언 이후 전세계 시장은 대혼란에 빠져 들었다. 이탈리아 국채 금리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출범 이후 최고치 수준으로 뛰어올랐고 독일 정부는 그가 '유럽인답지 못한(un-European)' 행동을 했다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그리스의 선택은 우리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지난해 초 유럽 재정위기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후 유럽의 지도자들은 파산 직전에 놓인 국가들과 부실 은행을 지원하기 위해 막대한 구제 금융을 집행했다. 앞으로 구제 금융의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작 세금을 내 이 돈을 부담하는 국민들의 의사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현재 그리스인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구제금융안을 받아들여 향후 10년간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감시하에 혹독한 긴축을 이행하거나 당장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하고 유로존 잔류를 포기하는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파판드레우 총리가 국민투표를 제안하고 나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스 국민들이 구제금융과 이에 따른 긴축을 받아들이면 파판드레우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강화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결과에 따른 경제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 국민들이 자국으로 경제 위기가 전염될까 전전긍긍하는 독일 정치가들에 저항해 거리로 뛰쳐나오는 것보다는 이러한 결과가 훨씬 낫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고 디폴트를 선언하면 당장 극심한 피해가 나타날 것이다. 특히 그리스 국채를 대량 보유한 프랑스 은행의 피해가 극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은 언젠가 결국 파판드레우 총리와 그리스인들의 선택에 감사해 할지도 모른다.
그리스 디폴트는 이와 비슷한 처지의 국가들에 또 다른 교훈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 긴축안 실행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긴축안에 따른 각종 규제를 따르면 그리스의 '기업활동 하기 좋은 나라 순위'는 전세계 100위까지 떨어진다. 국민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연금 개혁 등 강력한 긴축을 추진하고 있는 이탈리아 정부가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