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눈으로 본 마티스와 야수들 "영혼을 넓혀주는 핑크빛 색채" 그림에도 보는 법이 있다. 같은 화가의 그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작품이 뛰어 날수도 있고 평범해질 수 있다. 지금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마티스와 불멸의 색채화가들’전은 그런 그림 보는 기술에 있어 새로운 감상을 요구한다. 프랑스 유학시절 나는 유럽과 구미의 미술관을 돌아다니면서 고흐와 고갱, 피카소는 물론 야수파와 마티스 걸작들을 신물이 날 정도로 보아왔다. 그럼에도 어렵게 서울 출장을 온 이 명화들을 다시 보는 일은 여전히 내게 상쾌하고 가슴 뭉클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자신의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언제나 진정제 같은 기쁨이 되기를 꿈꾸었던 마티스, 그래서 그는 선으로 이루어지는 드로잉과 모든 유화 작품들을 똑같이 소중하게 간주했다. 사람들은 어쩌면 마티스의 대표작 ‘댄스’ 나 ‘붉은 실내’ ‘블루 누드’가 아니어서 섭섭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말년의 색종이 작품 ‘오세아니아의 바다’와 ‘빨간 비단 바지를 입은 오달리스크’ 류의 석판화와 얼굴 드로잉 등은 니스의 마티스 미술관 소장품이나 마지막 ‘왕의 슬픔’ 못지않은 감동을 우리들에게 전해준다. 그의 화폭 속의 선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모두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마티스는 그의 직관을 믿었으며 나비처럼 부서질 듯 한 섬세함으로 화면의 무늬를 수놓았고 격정적인 색채의 반란으로 색채에 상상력을 입혔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의 스승 구스타프 모로의 가르침이었으며 이러한 과제는 바로 야수파 그룹이 도달해야 할 목적지이기도 하다. 진정 우리가 이 작품들 속에서 보아야 할 것은 그가 부르짖었던 "영혼을 넓혀주는 핑크빛 색채“를 볼 수 있는가 없는 가이다. 또한 야수파 작가들이 열망했던 것처럼 색채의 완벽한 질서와 미적 표현이 작품 속에 어떻게 나타내는가를 살피는 일이다. 보나르의 놀라운 색채와 리듬감 스며든 분위기, 드랭의 과감하고 거침없는 색채 실험. 경쾌하며 간결하고 균형감 있는 블루 화풍의 뒤피, 그림 속에 신성함을 이룩한 검은 선의 화가 루오, 생동감 넘치는 여인의 이미지를 탄생시킨 반 동겐, 블라맹크 등 이들의 원작들은 한 시대를 풍미해간 야수파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강렬함과 고요함 ,아름다운 색채의 하모니, 그리고 인상파가 이룩하지 못했던 색채의 상상력을 이들이 감행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그림들을 바로 현장에서 비교하고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명화들이 주는 축복이며 반가움이다. 야수파의 거장, 마티스의 그림을 못생긴 그림이라고 불태웠던 미국 시카고의 학생들, 피카소의 추종자들이 비아냥거리며 “늙고 절망적이며 이빨 빠진 처절한 사자”라고 불렀던 마티스. 마티스를 둘러싼 이들 야수파의 그림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장식적 차원의 미술에서 논의될 성질이 결코 아니다. 오죽하면 그의 전시를 본 후 6개월간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고 피카소가 고백하지 않았던가? 피카소. 그가 발견했던 색감과 선 그리고 화려함이 여기 야수파 그림들 속에 통째로 담겨있다. 피카소가 아프리카 미술에 탐닉할 수 있게 해준 주인공도, 피카소를 도둑이라고 비난하고 했던 사람도 바로 마티스였다. 소름이 끼칠 정도의 그림을 그린 마티스. 이렇게 소름 끼치게 황홀한 그림을 본적이 없다고 칭찬한 미국인 컬렉터 스타인, 그리고 마티스의 대표작들을 37점이나 싹쓸이 해간 러시아의 콜렉터 슈츠킨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왜 그의 대표작들이 우리들 시립미술관에 올 수 없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지금 마티스의 그림은 모든 경매에서 최고의 인기와 높은 그림 값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지난 10여년 사이 마티스의 그림 값은 최고 153%나 오르는 등 끝 모르는 마티스의 인기를 반증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마티스에게 헌정’ 이란 마크 로드코의 작품이 경매에서 235억원에 팔렸다. 하물며 마티스 유화의 작품 값이야 오죽하겠는가. “어느 누구도 마티스 그림을 나처럼, 그리고 내 그림을 마티스처럼 자세히 본 사람은 없다”-피카소 김종근 (미술평론가) 입력시간 : 2005/12/25 16: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