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속 그림, 학생들이 쉽게 설명해줘요"

서울대미술관서 박수근·이중섭 등 실물 작품 전시
초등5~중3 학생들이 직접 문화자원봉사자로 나서

이인성 '아리랑고개'

서세옥 '사람들'

이중섭 '물고기와 아이들'

미술 교과서에 등장하는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교과서 속 우리 미술'전이 서울대미술관에서 다음달 4일까지 열린다. 피카소ㆍ반 고흐는 알지만 장욱진ㆍ김종영은 잘 모르는 우리 초ㆍ중학생들이 한국 근ㆍ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실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라 방학을 맞은 학생들에게 유익한 전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중학교 미술교과서(지학사)에 수록된 근대화가 이인성의 '아리랑고개'(리움 소장)를 먼저 만나게 된다. '천재화가'라 불리며 각종 상을 휩쓸었던 이인성은 마흔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했다. 전시작은 궁핍했지만 정감 어린 우리네 고향의 모습을 담은 수채화다. 전후(戰後) 여인들의 소박한 일상을 그린 박수근의 '노상'(국립현대미술관 소장)과 가난 때문에 담뱃갑 속 은박지에 그림을 그린 이중섭의 은지화 '물고기와 아이들'(국립현대미술관)도 나란히 걸렸다. 비슷한 연배의 작가들이지만 삶은 전혀 달랐던 이들의 작품을 통해 20세기 초 한국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으며 서양미술의 도입과 미술의 학문화 과정 등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기획 특성을 고려해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을 도슨트(문화자원봉사자)로 참여시켰다. 학예사들과 함께 사전학습을 진행한 15명의 학생들이 또래 관람객들과 같은 눈높이의 질문을 받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설명을 해준다.

중학교 교과서(미래엔컬처그룹)에 실린 유영국의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산'(유영국미술문화재단), 초등학교 5~6학년 교과서(천재교육)에 수록된 순수 추상조각의 개척자인 조각가 김종영의 '자각상(自刻像)'(김종영미술관) 등이 어린 관람객들의 질문을 이끌어 낸다.

실제로 유영국의 추상화 '산'을 본 어린이 관람객이 "왜 산을 산처럼 보이지도 않게 저렇게 그렸어요?"라고 물으면 또래 도슨트는 "직접적으로 뭔가를 말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는 시대였대요. 그래도 작가들은 사회를 바꿔나가는 데 함께 하려고 했는데…"라는 식으로 대답을 이어간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오진이 서울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미술교과서 '감상' 영역의 목표는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를 이해하라는 취지가 있다"며 "가령 1960년대 젊은 작가들이 주류가 아니었던 추상미술에 뛰어든 것은 구체적인 표현에 대한 억압이 느껴진 당시 상황이 영향을 미쳤고 그럼에도 작가들이 변혁을 꿈꾸며 사회적 변화에 동참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현대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작품들로 장욱진의 '밤과 노인'등의 작품들과 서세옥의 '사람들', 박생관의 '무속-16' 등이 전시됐다. 마지막 섹션은 추상 조각가 정광호와 박은선, 팝아트 작가인 이동기와 권기수로 이어진다. 오 학예연구사는 "공교육 미술의 부족분을 보완하기 위한 전시로 학교 미술사적 배경지식을 배제하고도 이해할 수 있는 작품들인 동시에 우리가 가진 선입견과 편견에 대항하는 작품들"이라고 소개했다.

한편 전시장 지하 라운지에는 500권의 청소년 도서와 사비에 러스트ㆍ필립스탁 등 디자이너 의자가 비치돼 쉼터를 제공한다. (02)880-9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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