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채권단 후임자 물색 발빠른 행보/안천학·박운서 한중 전·현직사장 거론까지/“제3자인수 위한 시나리오” 의혹증폭정부는 김선홍 기아그룹회장의 사퇴에 대비, 후임자를 물색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사퇴도 하지않은 김회장의 후임자를 찾고 있어 제3자인수를 위한 사전각본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정부와 채권은행단은 김회장의 사퇴를 끈질기게 종용하면서 협력사에 대한 자금지원거부 등을 무기로 압박을 가하고 있어 김회장의 사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김회장이 사퇴를 거부하고 있고 김회장의 사퇴서 제출이 곧바로 사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당장 기아의 경영진이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김회장 체제가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채권은행단과 기아경영진 사이의 불신감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어 기아가 자력갱생하지 못하는 한 경영진 교체시기는 예상보다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기아 및 협력·하청업체 문제가 정기국회 개원 및 추석이 이어지는 9월까지 지속돼서는 곤란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 경우 정치논리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사회문제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아의 경영진 및 노조에 대해 경영진사퇴서와 인원감축동의서를 제출하라는 정부와 채권은행단의 직·간접적인 압력을 강화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부와 채권은행단이 오래전부터 물색중인 김회장 후임자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현재 가장 많이 거론되고 있는 인물은 한국중공업의 전·현직 사장인 안천학씨와 박운서씨 두 사람. 안사장은 적자투성이었던 한중을 맡아 과감한 경영혁신을 통해 회생시킨 일등공신이다. 박사장은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흑자기조를 정착시키고 있다.
기아를 살리기 위해서는 아이아코카회장이 크라이슬러의 경영을 획기적으로 쇄신시킨 것처럼 기아 임직원들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고 경영혁신 노하우와 과감한 추진력이 뒷받침된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와 채권은행단의 분명한 인식이다.
기아노조가 강성노조인 것을 감안하면 확고한 노사관계관을 갖고 있는 박사장이 적임으로 보이나 그만큼 마찰의 소지가 크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박사장은 통산부차관시절 삼성의 승용차진출을 승인해준 실무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
쌍용출신인 안사장은 경영혁신 노하우가 남달라 현재로선 가장 적임자로 꼽히고 있다. 그가 현재 아무런 직책도 맡고 있지 않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통상산업부가 최근 그의 행적을 수소문한 것이 확인돼 더욱 주목된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크라이슬러가 회생한 것은 정부의 지원이 아니라 뼈를 깎는 자구노력 덕분이며 이는 아이아코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면서 『기아가 희망대로 제3자에게 인수를 당하지 않고 자력갱생을 하기 위해서라도 유능한 전문경영인을 추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대해 업계에서는 『정부가 기아사태발생 초기부터 김회장의 사퇴를 전제로 후임자를 물색해 제3자인수를 위한 시나리오가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김준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