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존재감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좀더 뚜렷한 형태로 흡사 블랙홀같은 어둠의 중심부위에서 힘껏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그 존재감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엉뚱하게도 그 존재감의 실체는 온몸을 버둥거리며 울고 있는 어린아이였다.」작가 송기원(52)의 신작 소설 「안으로의 여행」(문이당 펴냄)에 나오는 지문 한토막이다. 작가의 새 소설은 상실이라는 블랙홀에 빠진 자신의 존재를 찾아나서는 구도여행을 담았다. 예컨데 그것은 불립문자(不立文字)와도 같은 선적(禪的) 명상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고, 든든한 동지애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꾸는 이데올로기적 추동력을 동원해서도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송기원은 주인공을 인도로 떠나보내 많은 사람, 그리고 대자연의 위대한 숨소리와 만나게 한다. 작가 스스로가 오랜 인도여행을 경험한 바 있고, 계룡산 갑사 토굴에 작업실을 만들어 칩거한 탓일 것이다.
주인공인 「나, 박연호」는 욕정과 충동의 휘둘림에 영혼과 육체를 맡겨 살아온 사람이다. 잡지사 기자인 「그」가 여류화가를 인터뷰하다 요상스런 기운이 발동해 설악산 콘도로 직행해 요란스런 정사를 벌이다가 약물과다복용으로 그 여자가 죽는 사건을 경험한다. 이혼 그리고 혼돈….
「나」는 인도로 떠난다. 자기 자신을 방생(放生)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곳에서 옛 친구 한태인을 만난다. 한태인은 이렇게 말한다.
『속물근성이란 크게 세가지. 질투심, 자만심, 그리고 수치심이다. 그중에서도 수치심이 가장 해롭다고 할 수 있지.』
사실 수치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몰입이고 집착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것도 포함해서 그것을 버려야만 진정한 방생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것.
「나, 박연호」는 그런 한태인을 비롯해 이정미, 제인 등 여러 여자들과 또(?) 만난다. 결국 자신을 내던지려고 인도로 향했던 주인공은 또 다른 여자는 물론이고 선문답과도 같은 기묘한 만남을 이어간다. 물론 히말라야 설산이 그를 압도하듯이 다가오고 있음을 함께 느끼면서.
소설 「안으로의 여행」은 육신을 투기(投棄)해 그곳에 숨어 있던 살기(殺氣) 또한 버리려는 모진 영혼의 방황을 그리고 있다. 때문에 이상한 기운이 작품 전체에 넘실거리면서도 속물들의 그 허허로운 몸짓, 그리고 서툰 인생살이가 비릿내를 풍기면서 드러난다. 어차피 소설 「안으로의 여행」은 속물들이 자신을 방생하는 난해하기 이를데 없는 여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용웅 기자 YYO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