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 우리나라 역사에 여러 가지 의미가 깊은 해이다. 지난 87년 민주화항쟁이 군사정권을 몰아낸 지 20년이 되는 해이고 무엇보다도 97년 외환위기를 겪은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가 채택한 경제정책 노선은 노무현 대통령이 자기 노선을 묘사한 ‘좌파신자유주의’로 잘 요약된다. 자본시장 자유화 및 개방, 노동시장 유연화, 민영화, 규제 완화 등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되 사회복지 지출을 늘리고 재벌을 규제해 불평등을 줄인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경제 체제를 불평등하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그의 해체를 원했던 개혁 세력과 과거에는 박정희식 개입주의를 추종하다가 신자유주의로 뒤늦게 ‘개종’해 시장의 자유를 갈구하던 보수 세력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나온 노선이다.
그러나 과거 10여년간 추진된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우선 빈부격차가 크게 악화하고 빈곤 문제가 심각해졌다. 자본시장의 자유화로 투기성 소득이 늘고 노동시장의 자유화로 임금 격차와 비정규직 비율이 늘어난 결과이다. 그 결과 소득 분배가 평등한 것으로 유명하던 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밑에서 두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불평등한 나라가 됐다. 가뜩이나 높던 비정규직의 비율이 이제 OECD 최고가 됐고 정규직인 사람들도 고용 불안에 시달리게 됐다. 현 정부의 ‘좌파’적 성향 때문에 사회복지 지출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6%대에서 8%대로 조금 늘기는 했지만 시장자유화로 강화된 불평등 요인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불평등 증가 자체보다도 더 걱정스러운 것은 대다수 국민들이 미래에 대해 느끼는 절망감이다. 최근 통계청의 조사를 보면 불과 3년 전의 조사와 비교해도 노력하면 다음 세대에 자기 가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52%에서 46%로 줄어들었고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19%에서 28%로 급격히 늘어났다. 저소득층의 6~7%는 경제적인 이유로 자살 충동을 느껴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 도박과 투기의 열풍이 불고 있는 것도 이러한 추세와 무관하지 않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는 고생하더라도 자식들은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지만 그런 희망이 없어지면서 투기나 도박을 통해서라도 ‘대박’을 터뜨려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성장의 둔화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빈부격차가 심해지더라도 시장이 자유화돼 이윤동기가 자극되면 성장이 촉진되고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득을 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반대였다. 66년에서 96년 사이 30년간 7%에 달하던 우리나라의 1인당 경제성장률은 외환위기 이후 97년부터 2005년 사이에 3.6%로 급감했다. 자본시장의 자유화와 개방이 투기를 조장하고 장기적인 생산적 투자를 어렵게 만들었고 노동시장의 자유화가 고용 불안을 증가시켜 소비를 위축시켰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채택 이후 경제성장이 둔화된 것은 우리나라만의 경험이 아니다. 국가개입주의가 득세했던 60~70년대에 1인당 기준으로 연간 3% 정도였던 세계 경제의 성장률은 신자유주의가 강화된 80년대 이후 2%대로 줄어들었다. 개발도상국의 경우는 특히 80년대 이후 자본시장 개방 등으로 경제 불안이 가중되면서 그 성장률이 연간 3%에서 1.5% 정도로 떨어졌다. 이것도 중국ㆍ인도 등 일부 개방과 자유화를 하기는 했지만 신자유주의 노선의 채택을 거부한 두 나라가 80년대 이후 성적이 좋아서 평균이 그 정도라도 된 것이지 신자유주의를 착실히 따랐던 다른 개도국들의 성적은 비참하다. 옛 사회주의권과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신자유주의 채택 이후 성장을 멈췄으며 남미도 80년대 이후 1인당 경제성장률이 과거 연간 3%에서 1%로 떨어졌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가 추구해온 신자유주의 노선의 실패는 이제 명백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한 술 더 떠서 무리하게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밀어붙여 신자유주의 개혁을 강화하려 한다. 잘못된 길을 들었으면 한시라도 빨리 원점으로 되돌아가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길을 잘못 든 것을 부인하고 길이 포장이 잘 안돼서, 길에 장애물이 많아서, 이런저런 핑계만 대고 계속 틀린 길을 가면 원하는 목적지에서는 점점 더 멀어진다.
외환위기 10주년을 맞아 올해에는 우리 경제의 앞날에 대한 더 진지한 고민과 방향 전환이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