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나온 '신라면 블랙'은 기자가 평소 인스턴트 식품을 기피하는 아내에게 부리는 억지 도구였다. 기자는 "설렁탕 하나랑 똑같다잖아"라고 큰소리를 내며 슬쩍 대형마트 카트에 담아 계산대로 향하고는 했다. 인스턴트 식품을 사기 위한 좋은 핑계거리였던 신라면 블랙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허위과장 광고로 징계를 내리기로 하면서다. '설렁탕 한 그릇의 맛과 영양이 그대로 담겨있다'는 광고 내용과 실제 성분이 틀렸다니 징계는 당연하다. 괘씸하기까지도 하다. 그런데 정말 라면과 설렁탕의 영양이 같을 것이라고 믿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냥 비싸지만 설렁탕 맛이 나는 라면으로 받아들인 소비자라면 허위광고에 이토록 화를 내지도 배신감을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다. 광고가 제공한 허황된 기대감은 본질을 흐리며 신라면 블랙을 정부의 물가 관리 타깃으로 소비자들을 기만한 상품으로 확대 재생산 했다. 라면은 라면일 뿐인데… 29일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국회 공청회가 열렸다. 정치권의 민생대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재계 총수들에게 불참할 경우 청문회로 격상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한나라당 당권 주자들도 너도 나도 재벌 군기 잡기에 한마디씩 거들고 있다. 마치 대기업을 비판하거나 비난해야만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식이다. 당 대표 선거도 '대기업 때리기'라는 포퓰리즘에 휩싸여 관행의 개선이라는 본질을 잃어버린 것 같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현안에 대해 필요하다면 재계총수는 물론 대통령도 청문회에 부를 수 있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당연히 국회에 출석해 사회적 논쟁에 참여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너 내 말 안 들어? 두고 보자'식의 감정적인 접근은 곤란하다. 등록금과 감세 정책을 비판한 재계총수를 엉뚱한 지식경제위원회 공청회에 불러 놓고 따지겠다는 건 누가 봐도 괘씸죄로밖에 안 보인다. 대기업 정책의 본질은 잘못된 관행에 대해 법과 제도의 정비를 통해 바로 잡는 것이다. 콩나물ㆍ두부까지 대기업이 뛰어들어 재래시장을 죽인다면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등을 통해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제한하고 또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 편법적인 상속 증여에 대해서도 상속ㆍ증여세법을 정비해 시정하면 된다. 라면은 라면일 뿐이듯 대기업도 우리 경제 성장의 중요한 축이란 본질이 국회 내 포퓰리즘으로 흐려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