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연구도 분야따라 고역 심하네"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4월호 www.popsci.co.kr

대변이 슈퍼박테리아인 C.디피실리균의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암내의 연구는 암 진단기법의 혁신적 진전을 불러올지도 모 른다.

박테리아 잡는 대변 이식…
암내 수집·분석…고래 사체 해부…
항생제 내성 가진 박테리아 환자
건강한 사람 대변 이식해 치료
악취·유해물질 가득한 해양 점액
온몸 던져 채취해 발생원인 규명
겨드랑이 냄새·구취 모아 냉동보관
신원 확인·암 발병 감지기술등 개발
고래 사체속에서 해부·연구작업
비릿한 냄새에 피·기름 범벅 일쑤
사람모양 플라스틱인형에 재채기
신종플루등 감염 메커니즘 연구
과학기술계 최악의 연구분야 과학자는 초등학교 학생들의 장래희망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직업이다. 하지만 과학자라고 해서 모두가 실험실에서 흰색 가운을 입고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다. 연구분야에 따라 막노동에 가까운 육체작업을 하거나 대변, 동물사체, 암내 등 더럽기 짝이 없는 물질들과 씨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파퓰러사이언스는 이처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고역을 감내해야 하는 최악(?)의 연구분야와 연구자를 선정, 발표했다. 박테리아 잡는 대변 이식 전문가 캐나다 캘거리 소재 풋힐스 병원의 내과의사 톰 루이 박사는 이식 전문가다. 하지만 여느 의사처럼 인체조직이나 장기를 이식하지는 않는다. 그가 이식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대변이다.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농도 0.9의 염화나트륨 용액과 혼합한 뒤 환자의 코를 통해 장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 그의 연구이자 일과다. 전 세계의 수많은 과학 연구 중 가장 역겨운 분야로 이 같은 '대변 이식술'이 선정됐다. 대변 이식은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 그 중에서도 장에 기생하며 설사와 패혈증을 일으키는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리균(C.difficile)'을 위한 새로운 치료법이다. 미국에서만 매년 50만명이 이 균에 감염돼 5,000명~2만명이 사망하고 있지만 지금껏 마땅한 치료법이 없었는데 대변 이식술이 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 루이 박사에 따르면 이렇게 정상인의 대변을 환자의 장에 넣으면 유익한 세균이 증식, C.디피실리균의 숫자를 신속히 줄여준다. 치료제의 원료가 대변이니만큼 강한 비위는 대변이식술 전문의들의 첫 번째 자질이다. 연구와 시술 과정에서 두통을 유발할 듯한 악취를 참아내야 한다. 양질(?)의 대변 확보를 위해 구걸을 불사하는 열정도 요구된다. 콧속으로 주입되는 대변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할 환자를 설득해 시술 동의를 받는 것은 이들에게는 오히려 쉬운 일에 속한다. 플랑크톤 점액 다이버 대변 이식술에 이어 '해양 점액(marine mucilage)' 연구가 가장 소름끼치는 분야로 꼽혔다. 해양 점액은 플랑크톤이 스트레스를 받을 때 토해 내는 끈끈한 유기물질 덩어리로서 한번 발생하면 수개월간 지속되며 어류의 호흡을 막고 바다의 용존산소를 줄여 막대한 해양자원 피해를 일으킨다. 이탈리아 폴리테크닉 대학의 안토니오 푸세두 박사를 비롯한 해양 점액 연구자들은 이러한 점액질 속으로 온 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헤엄을 치며 대형 주사기로 점액을 채취한다. 이를 분석해 해양 점액의 발생 원인을 찾고 대응방안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해양 점액은 썩은 계란에 비견되는 지독한 냄새를 발산한다. 게다가 그 속에는 죽은 어패류에서 박테리아에 이르기까지 온갖 유해물질들이 가득하다. 피부에 닿으면 병균에 감염될 수 있어 일반인들은 한 방울만 튀어도 질겁할 정도다. 푸세두 박사는 이렇듯 위험을 무릅쓴 연구를 통해 최근 증가일로에 있는 해양 점액 발생률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임을 확인했다. 다른 연구자들도 어류 남획과 환경오염이 해양 생태계를 교란, 해양 점액 발생을 가속화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암내 수집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악취 중에 암내만큼 고약한 것도 없다. 그런데 일부러 이 암내를 찾아 수집하는 연구자가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사실이다.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모넬화학감각센터(MCSC)의 조지 프레티 박사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최고로 지저분한 연구의 종사자로 꼽힌 그는 지난 1973년부터 인간의 체취를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암내와 구취, 소변 냄새의 수집에 대다수 연구시간을 할애한다. 이 체취들을 분석, 각각의 사람이 지닌 고유한 냄새를 분리해내는 게 그가 수행하고 있는 연구의 핵심이다. 때문에 프레티 박사는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냄새 기증자의 겨드랑이에 패드를 끼우거나 입에 물고 있게 한 뒤 밀봉해 냉동 보관하는데 사용한다. 그에 따르면 온갖 체취로 가득한 냉동고에서는 어지러울 정도로 지독한 사향 냄새가 난다고 한다. 물론 개인 본연의 냄새를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지문이나 홍채 인식보다 훨씬 정확한 신원확인 보안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다. 특히 이 기술을 고도화하면 흑색종, 난소암 등 독특한 휘발성 물질을 내뿜는 암의 발병을 냄새만으로 감지하는 기술 개발도 가능하다. 미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2008년부터 프레티 박사의 리얼노우즈(RealNose) 프로젝트에 상당한 자금을 지원 중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래 사체 해부자 미국 산타바버라 자연사박물관의 큐레이터인 미쉘 버먼 박사는 해안에 고래의 사체가 밀려오면 만사를 제쳐놓고 그곳으로 달려간다. 고래 연구를 위해 사체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돌고래 같은 소형고래는 그대로 연구실로 이송하면 된다. 하지만 집채만 한 큰 고래라면 얘기가 다르다. 내장을 일일이 해부해 분리해야 한다. 이처럼 사체를 해부해야하는 고래 연구가 가장 당혹스런 연구분야로 선정됐다. 굳이 당혹스럽다는 표현을 쓴 것은 해부 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상황 때문이다. 실제로 대왕고래, 향유고래 등 길이가 10m를 훌쩍 넘는 고래들은 피부를 절개한 후 사체 속으로 들어가 작업을 해야 한다. 이 경우 작업하는 동안 피가 무릎까지 차올라 피의 강을 걷는 것 같은 섬뜩함을 감수해야한다. 또한 피부와 머리카락은 고래 지방의 기름으로 범벅이 되는데 아무리 닦아내도 비릿한 냄새가 수년간 지워지지 않을 수 있다. 일반인들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겠지만 사실 이 정도는 약과다. 해부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부패가 진행된 사체다. 이런 사체는 가스가 들어차 있어 절개를 조금만 잘못해도 폭발을 일으키며 연구자를 내동댕이치고 피와 내장을 해안 전체에 흩뿌려 놓는다. 재채기 타액 연구자 최악의 연구분야 마지막은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캠퍼스의 마크 니카스 박사 등이 수행하는 재채기 연구가 차지했다. 이들의 연구 목표는 재채기에 의한 질병의 감염 메커니즘을 명확히 밝혀내는 것. 신종플루 등 많은 질병들이 감염자의 재채기에서 분비되는 타액과 콧물로 전염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분비물이 전달되는지, 어느 부위에 분비물이 묻었을 때 감염률이 높은지 등은 아직까지 연구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니카스 박사는 피실험자들에게 식염수를 소량 머금게 하고 사람 얼굴 모양의 플라스틱 인형에 재채기를 시킨다. 그런 다음 염화이온 검출기로 어느 부위에 얼마만큼의 분비물이 묻었는지 확인한다. 연구라고 하기에 다소 부족해보일지 몰라도 이는 지난 100년간 누구도 알지 못했던 정보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니카스 박사는 이 정보가 향후 재채기를 통한 질병 확산을 한층 효과적으로 차단케 해줄 단초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미국 국토안보부(DHS)와 환경보호청도 이러한 생각에 동조해 그에게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