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권국가, 재정정책 딜레마

'경기가 우선이냐, 규정이 우선이냐'오는 2004년까지 재정수지의 균형을 맞추기로 한 유로권 국가들의 규정이 이 지역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으로 우려되면서 유럽 단일통화권의 재정정책이 난관에 봉착했다. 기존 규정을 고수할 경우 심각한 재정적자에 빠져 있는 독일ㆍ프랑스ㆍ이탈리아 등 3국 정부는 손발이 묶여 경기 부양에 나설 수 없기 때문. 이들 3국은 유로권 경제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지역 경기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독일의 경우 유로권 12개국 가운데 적자 폭이 가장 커 유로권의 재정정책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는 상태다. 현재 유로화를 도입한 12개국 가운데 재정수지 균형을 맞추지 못한 나라는 이들 3국을 포함, 회원국의 절반을 넘는 7개국에 달한다. 특히 이 지역 경제를 주도하는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 각각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각각 2.8%와 2.6%에 달하는 높은 수준이어서 예정대로 2004년까지 적자를 해소하기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큰 실정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지난 주 2004년으로 예정된 시한을 2007년까지 늦출 것을 제안한 상황. 기존 규정을 바꾸자는 프랑스측 요구에 대해 독일은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부었지만 사정이 급박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보도했다. 실제 독일 정부는 지난 16일 올해 세수는 지난해 11월 당시의 추정치보다 훨씬 줄어든 4,548억 유로에 그칠 것이라고 발표, 2004년까지 재정수지를 맞추기 위해선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문제는 재정균형을 고집하기엔 유로권 경기가 썩 좋지 않다는 점. 독일의 경우 지난 1ㆍ4분기 중 경제성장률이 전 분기보다는 소폭 오름세를 보였지만 전년동기 대비로는 마이너스 1.4%로 급강하, 지난 93년 이래 가장 큰 낙폭을 보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독일 등 유로권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할 국가들이 규정을 지키기 위해 재정지출 확대와 감세 등을 통한 경기 활성화를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당초 규정을 무시함으로써 유로화에 대한 신뢰를 흔드는 모험을 감수할 것인지 유로권 국가들은 당분간 골머리를 앓아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경립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