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가짜 비지니스

www.emailcafe.net에 연재되는 산업부 고진갑기자의 베이징통신을 sedaily.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이번기사는 2002년 11월 18일 작성된 기사입니다. 중간고사를 치르느라 소식이 늦었네요. 덕분에 그런대로 잘 치렀습니다. 답안지는 잘 보고 잘 냈으니까요. 학위 주는 것도 아니면서 늙으막히 시험보라니 왕짜증이 났지만 시험 공부 하며 그동안 밀린 복습도 하고, 머리가 얼마나 녹슬었는지 실험해 보는 등 여러 각도에서 저를 점검했습니다. 이번 소식은 개가죽을 호랑이 가죽으로 바꿔 판 엽기적인 가짜 비즈니스에 관한 것입니다. 지난 주말 이 사건이 일어났던 골동품 시장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인들 대부분은 중국의 골동품 시장하면 유리창(琉璃廠) 거리를 떠올릴 것입니다. 이 곳은 78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으로 그동안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패키지 관광코스였고, 아직도 베이징에 단체 관광 온 일부 한국인들이 주로 찾는 거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최근 이 거리는 가짜들의 범람으로 관광객들이 외면해 썰렁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 지역 관할 구청인 베이징시 쉬엔우(宣武)구는 이곳에 1백억윈위엔(한국돈 1조5천억원)을 투자, 완전개조에 착수한다는 계획안을 확정, 지난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하나가 쇠퇴하면 곧바로 대체품이 나오듯 이 거리의 후퇴로 인해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골동품 시장이 바로 저가 어제(일요일) 다녀 온 판자위안(潘家園)입니다.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동남쪽에 있는 이 곳은 서울로 치면 인사동 골동품시장과 황학동 고물시장을 합해 놓은 것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이 곳은 잘만 고르면 꽤 괜찮은 물건을 구할 수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중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이 반드시 한번쯤은 찾는 명소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시장도 파는 물건의 90%가 진품이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렇게 믿고 살 곳은 전혀 아닙니다. 바로 어제(일요일)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찾아간 판자위안은 가히 별천지였습니다. 땅덩어리가 넓고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여서 그런지 가게마다 도자기, 서화, 고가구 등 골동품성에서부터 잡다한 생활용품까지 중국의 오래된 매물이 무궁무진하게 널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식견이 없어서 그런지 제가 보기에는 모두가 진짜로만 보였습니다. 재미삼아 흥정을 해 봤습니다. 물건을 둘러싼 흥정에는 자못 팽팽한 긴장감이 돌아 상당한 재미가 있습니다. 물건값도 제가 보기에는 정말 저렴했습니다. 이런 물건이라면 가짜이더라도 십중팔구 사고 싶은 유혹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베이징에 거주하는 한국인들 가운데 매 주말마다 이곳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이 곳을 찾는 이유는 가짜인지 알면서 사는 맛이 그만인데다 운이 좋으면 한국에서 온 전문가에게 `진짜`라고 감정 받는 사례도 간혹 나와 `대박`을 터트리는 짜릿한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얼마전 이 시장에서 웬만한 가짜에는 놀라지 않는 골동품 매니아들 조차 놀라게 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저가 오늘 얘기하고 싶은 개가죽을 호랑이 가죽으로 둔갑시킨 희대의 사기극이 그 것입니다. 사건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지난 9월말 이 시장에서 호랑이 가죽 12장을 팔던 상인이 경찰에 잡혔습니다. 밀렵을 통해 잡을 수밖에 없는 세계적인 보호동물인 호랑이 가죽을 파는 상인을 잡았으니 경찰이 흥분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경찰은 이들을 검거한 직후 `국제 밀렵조직의 꼬리를 잡았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작 드러난 것은 어처구니 없게 가짜극을 연출한 상인들에게 놀아난 것입니다. 이 가죽을 팔던 상인들은 중국 감숙성에 가짜 제조공장을 만들어 놓고 누렁개 가죽을 정교하게 염색하고 연결해 전문가도 알아보기 힘든 대호(大虎)가죽을 만들었습니다. 이들이 만든 호랑이 가죽은 얼마나 정교했던지 이들을 검거한 경찰 조차도 놀랐다고 합니다. 이 가죽은 판자위안 시장에서 불과 300위엔(약 5만원)에 팔렸답니다. 이미 상당수가 해외로 팔려나갔고요. 물론 이 상품을 산 사람들의 대부분이 어리숙한 관광객이지만요. 아무튼 이들의 기막힌 솜씨에 세계가 당하고 만 것입니다. 엽기적인 이 사건은 필경 `가짜천국(?)`이라고도 할 수 있는 오늘의 중국을 들여다보는 한 단면일 것입니다. <고진갑기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