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의 헨리 포드와 한 소년사이에 학교교육에 대한 작은 설전이 벌어졌다.존 다링거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이 노인이 학교교육에 대해 상당히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 이젠 세상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현대」란 말이예요』
아이의 말을 포드가 잡아챘다. 『애야, 그 「현대」를 발명한게 바로 나란다.』
「내가 현대를 만들었다」는 포드의 말은 20세기초에 자신이 이룩한 업적을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다.
포드는 자신이 발명한 승용차 「모델 T」를 생산하면서 세계에서 처음으로 컨베이어벨트 생산방식을 개발, 전 세계에 대량생산시대를 열었다. 부품 및 조립품을 끊임없이 실어나르는 작업대 앞에 늘어선 노동자들이 나눠 받은 작업동작을 온종일 반복하는 풍경은 오늘날 전 생산현장에 일반화돼 있지만 그때에는 낯선 풍경이었다.
포드가 1903년 미국의 자동차도시인 디트로이트에서 중소 자본가들의 자본을 모아 포드자동차를 설립했을 때 미국에는 이미 50개 이상의 자동차공장이 설립돼 있었다. 하지만 당시 자동차는 돈많은 부유층이나 자본가들이 발명가의 힘을 빌려 자신의 차를 직접 생산해 몰고 다니는 수준의 유한계급 사치품에 불과했다.
포드의 이름을 세계에 떨친 「모델T」가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포드자동차 설립 후 5년이 지난 1908년. 다른 자동차회사들의 자동차값이 평균 2,000달러에 달하던 이때 「모델T」는 825달러에 팔렸다. 노동자들이 공구를 들고 작업대로 찾아가 제품을 만들고 조립하던 기존 방식을 뒤바꾼 컨베이어 생산방식을 도입, 대량생산 체제를 갖춘 것이다. 대량생산을 통해 원가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자동차를 싼값에 대량 공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자동차를 최초로 발명한 나라는 독일이지만 상품화를 이끈 나라는 미국이고 자동차대중화를 개척한 것은 바로 포드였다.
1914년 포드의 종업원 1만3,000여명이 생산한 T형자동차는 26만7,720대. 미국의 나머지 299개 자동차회사에서 6만6,350명이 생산한 28만6,770대와 맞먹는 숫자다. 종전에 자동차 한대 생산하는데 728분 걸리던 것이 컨베이어 생산시스템을 통해 98분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포드의 승리는 자동차에서 끝나지 않았다. 포드의 방식, 포드를 개조한 방식들이 경쟁사는 물론 다른 부문까지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포드가 대량 생산시대인 「현대」를 발명했다는 말이 결토 농담이 아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미국 GM에 이어 세계 2위 자동차업체로 자리잡은 포드의 유산 포드자동차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또다시 거대한 포부를 드러내 세계자동차시장을 긴장시키고 있다. 그것도 공교롭게도 세기말인 올 1월초 취임한 헨리포드의 증손자 월리엄 클레이 헨리포드 2세(42)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지난 1월 안전한 차의 대명사인 스웨덴 볼보의 승용차사업부문을 64억5,000만달러에 전격 인수한 것. 이에따라 포드는 자사를 정점으로 이미 인수에 성공한 영국 재규어, 일본 마쓰다, 스웨덴 볼보를 아우르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됐다.
포드는 막대한 현금보유력을 바탕으로 일본 혼다, 독일 BMW 등과도 인수합병을 전제로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세계 1위업체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포드는 한국자동차업체와도 인연이 깊다. 기아와 포드, 포드의 자회사인 일본 마쓰다 3사가 지난 86년 자본 및 기술제휴계약인 이른바 「3각 메이플협약」을 맺고 마쓰다의 기술로 개발한 「프라이드」를 기아에서 생산한 후 포드 판매망을 통해 세계시장에 공급해왔다.
포드는 9.4%, 마쓰다는 7.5%의 기아자동차 지분을 보유해왔는데 이같은 인연으로 포드는 지난 97년 7월 쓰러진 기아 입찰에 뛰어들기도 했다.
포드는 이에앞서 기아를 인수한 현대자동차와도 인연을 맺은 전력이 있다.
현대와는 지난 67년 현대와 협력관계를 맺기 시작, 70년에는 절반씩 지분을 나눠 합작회사를 운영했으나 양측의 입장차이로 지금은 결별한 상태.
포드가 또다시 전 세계자동차업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것은 월리엄 클레이 헨리포드2세 전임자로 지난 93년 포드그룹 회장에 취임한 알렉스 트로트만회장이 추진해온 「포드 2000」 프로젝트때문이다.
트로트만 회장이 취임 1년만인 94년부터 시작한 포드2000은 개발-생산-유통-애프터서비스 등 자동차시스템 전반을 세계적으로 통합해 완벽한 글로벌경영체제를 구축한다는 것. 한마디로 전 세계에 구축된 회사의 자원을 더욱 효과적으로 이용해 규모의 경제를 이룩하자는게 핵심내용이다.
제품의 개발, 엔지니어링 생산관리시스템 등 모든 공정을 단순화시켜 하나의 범 세계적인 공통시스템으로 만들어 함께 사용하자는 것인데 예를들어 도장기술에 있어 독일의 쾰른공장이 가장 뛰어나다면 그 기술을 쾰른뿐 아니라 미국 ·호주·브라질·유럽 등 전 세계 포드공장에서 같이 사용하자는 표준화 작업을 말한다.
이 계획에 따라 포드사의 재정·경영·생산·제품개발 등이 모두 동일한 시스템으로 통일됐고 호주나 멕시코·독일 등 세계 200여국에 흩어져 있는 모든 포드공장들은 동일한 시스템 안에서 동일한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돼 두드러진 비용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포드는 이 프로젝트 도입 후 지난 연말까지 2년9개월 동안 연속 분기별 수익증가라는 기록을 세우며 새로운 밀레니엄을 달릴 「연료」를 비축하는데 성공했다. 순이익은 93년 25억달러에서 96년 44억달러로, 97년에는 69억달러로 급증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협력사 판매로 인한 이익을 포함 220억달러를 순이익으로 챙기는 기염을 토했다.
신제품의 구상에서부터 생산까지의 시간도 절반으로 줄어들어 해외공장까지 포괄할 경우 약 한달반에 한대꼴로 신차를 발표하고 있다. 트로트만 회장은 『현재 50%절도의 목표달성을 보이고 있는 포드2000프로젝트가 앞으로 4~5년후면 당초의 목표를 완전하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다음 세기까지 포드사의 경쟁력은 탄탄하게 확보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포드는 새회장체제에서도 포드 2000프로젝트를 지속할 것이라고 천명해놓고 있다. 포드는 이와함께 독일 BMW, 일본 혼다와 합병 또는 제휴를 모색하고 있다. 현대를 만든 포드가 미래를 어떤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지 세계자동차업체들이 주목하고 있다. 【정승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