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국민 눈높이 못 맞추는 세정당국


지난해 8월 조세당국은 역사상 유례없는 '굴욕'을 당했다. 근로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대거 전환하면서 세 부담 증가기준을 연소득 3,450만원으로 설정했다가 월급쟁이들의 반발에 부딪혀 불과 열흘도 안돼 5,500만원으로 상향했다. 세정당국이 수개월간 고심을 거듭해 내놓은 세제개편안이 한순간에 뒤집어지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국과 새누리당은 정기국회 때 고소득자 증세에 반대하던 정책기조를 뒤엎고 최고세율 구간을 3억원 초과에서 1억5,000만원으로 상향하기도 했다.

과세정상화 차원에서 추진했던 과제들도 국회에서 일제히 후퇴했다. 농수산물 의제매입세액공제, 기부금공제, 일감 몰아주기 과세제도 개선안이 각 이해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사실상 유명무실화됐다. 올해 들어서도 세정당국의 혼선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민ㆍ중산층 주거안정을 위한 임대차 선진화 방안'이 불과 일주일 만에 뒤집어진 것.

월세 임차인의 세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의 대책이 거꾸로 임대인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세정당국은 5일 저소득 임대인의 세 부담 시점을 연기하고 부담을 낮춰주는 보완대책을 부랴부랴 내놓았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시장의 반응조차 사전에 파악하지 못해 대책을 두 번이나 내놓는 우를 범한 것이다.

더구나 종교인 과세는 아예 국회와 종교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올스톱됐다. 당국이 조세원칙보다 지방선거 승리를 우선시해 청와대와 국회의 눈치만 보면서 나타난 결과다. 정부 정책의 핵심은 명확성과 투명성인데 각종 대책이 정부의 판단 실수로 며칠 새 뒤집어지거나 국회에서 과세원칙이 흔들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면서 오히려 국민의 혼란만 부추기는 것이다. 이러니 '무대책만 못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최근의 혼선을 보면 세정당국이 과연 국민의 눈높이를 헤아리지 못한 채 정책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데 급급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경제혁신3개년계획의 세부 이행과제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라'는 청와대의 마감시한에 맞추느라 설익은 대책을 남발한다는 의구심도 든다. 암호문 같은 복잡한 대책보다는 국민이 이해할 수 있고 시장의 반응을 꿰뚫는 혜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국민의 호주머니와 직결되는 세정은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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