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산책/4월 10일]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음악

사는 게 참 힘들다는 말을 많이 한다. 특히 해외에서 살다가 귀국한 사람들이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힘들게 사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름대로 살 만한 사람들까지도 삶의 목적이 돈을 많이 모으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알고 보면 따뜻한 가슴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가득 품고 살면서도 온통 일에 쫓기는데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온통 먹고사는 이야기뿐이어서 그 사람까지 그렇게 보일 때도 많다. 돌이켜보면 이것은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중 많은 사람이, 또는 우리 모두가 약간씩은 그렇게 사는 게 아닌가 싶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음악 이탈리아에서 성악공부에 매진할 때의 일이다. 그때 들은 에피소드 하나는 그들이 얼마나 삶을 즐기면서 살고 아름답게 영위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무대에서 이중창을 열창하던 한 성악가가 갑자기 가사를 잊어버렸다. 무대 위에서의 긴장감과 부담감 등은 때로 베테랑 성악가도 이런 난감한 상황을 겪게 한다. 그런데 이때 우리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기적처럼 일어난다. 무대 바로 앞에 앉아 감상하던 한 할머니가 작은 소리로 가사를 불러줘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평범한 할머니의 도움으로 음악회를 무사히 마치고 감동을 선사할 수 있었다는 이 에피소드는 하나의 작은 기적처럼 기억되고 있다. 기적이 꼭 사람이 하늘을 날거나 돌을 금으로 만들어내는 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성악을 좋아했지만 집안의 반대에 부딪혀 단식투쟁(?) 끝에 마침내 음악수업을 위해 건너간 음악과 오페라의 고향 이탈리아에서 필자는 이런 기적을 수없이 겪었다. 그들은 음악을 즐기며, 그 전에 삶을 아름답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보였다. 그들처럼 생활을 즐길 수 없는 고달픈 유학생 처지였지만 7년 동안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그리고 지난 2000년 마침내 필자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다가왔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오페라페스티벌을 위해 국립오페라단이 현지 오디션을 통해 선발한 피가로의 결혼 수잔나 역에 우리나라 최연소 주역을 기록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그러나 돌아온 한국에서의 현실과 성악가의 삶은 기대와는 너무나 달랐다. 우리나라에서 성악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많이 어렵다. 세계 무대에 내놓아도 좋을 만한 탁월한 실력을 지닌 성악가들도 막상 귀국을 하면 무대에 설 기회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성악가로서 노래를 하고 살아야 한다는 최소한의 삶의 의미조차 색이 바래고 마는 것이다. 공연장들은 문화와 예술을 표방하고 이름까지 그렇게 붙여놓았지만 사실은 뮤지컬이나 어린이용 유행 엔터테인먼트가 장악해버린 경우가 많다. 공연 기획자등 함께 노력해야 책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 이유가 관객의 외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서울의 구청 단위에서조차 음악회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켜 구민들의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가꿔가고 있는 것을 보면 관객의 외면이라는 이유는 설득력을 잃는다. 특히 시골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사람들이 너무나 좋아하며 공연장을 떠나는 모습을 볼 때 우리나라 사람이 얼마나 클래식을 좋아하지 알 수 있다. 클래식은 성악가의 노래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기획자의 전문성과 회관 관계자의 노력과 정성, 그리고 진행자의 피와 땀으로 이뤄가는 하나의 보석과도 같은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어우러졌을 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 이탈리아 할머니처럼 아름다운 인생의 향기를 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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