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위기 어디로] 사태 악화땐 유럽 유동성 부족 아시아 달러 폭등 부를 위험 커 위안화 조기절상 가능성 낮아져
입력 2010.05.09 17:36:50수정
2010.05.09 17:36:50
"리먼의 유령이 돌아다닌다."
지난 7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는 4월 중 미국의 일자리가 경기침체 이후 가장 많은 29만개 늘어났다는 대형 호재도 투자자들의 공포심리를 잠재우지 못하자 그리스 외채위기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시스템위기로 발전할 것이라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그리스 사태가 악화할 경우 유럽 은행의 글로벌 유동성 공급 부족으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통화 대비 달러 폭등이 또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노무라증권은 달러 대비 원화가치 하락에 대비할 것을 처음으로 권고했다. 중국의 위안화 조기 절상 가능성이 물 건너갔다는 분석도 등장했다.
급기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월 중단했던 유로존과의 통화스와프를 재가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8일 "FRB는 2월 종료된 통화스와프를 재가동하는 것이 시기상조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최근 글로벌 시장이 동요함에 따라 FRB가 글로벌 시장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인식이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 은행의 유동성 부족이 유럽과 아시아의 달러 부족 사태를 낳고 이런 방화벽을 쌓지 못하면 제2의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야기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FRB의 통화스와프 재가동 검토는 미국 은행권으로 부실이 확대되는 것을 막으려는 현실적인 이유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은행권은 그리스 대출 규모는 미미하지만 3조6,000억달러어치에 달하는 대 유럽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유로존(16개 유로화 통용국)의 중심인 독일과 프랑스 채권은 1조달러가 넘고 3위 국가인 스페인에도 2,000억달러를 빌려줬다.
유럽계 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 은행만큼이나 자본을 충분히 확충하지 않아 글로벌 시장의 자금줄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런던은행 간 금리(리보)가 최근 급등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가치가 급락하는 이유는 유럽 은행의 달러 공급이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영국계 RBS는 보고서에서 "그리스발 위기가 악화하면 2008년 가을과 같은 글로벌 달러 유동성 부족 사태가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유럽정책 당국이 동원할 수 있는 가용 수단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아시아 지역의 영향은 리먼브러더스 붕괴 때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 인터넷판에서 "그리스 외채위기가 미국에서부터 아시아까지 잔물결을 일으키고 있다"며 "유럽은 2008년 가을의 미국발 위기가 대서양을 넘어올 수 있음을 망각한 채 즐기는 측면이 있었지만 미국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월가에서는 벌써부터 '리먼의 유령'을 떠올리고 있다. 그리스라는 유럽 소국가의 외채위기가 시간이 갈수록, 그리스와 멀리 떨어질수록 파장이 오히려 확산, 심화되는 '잔물결효과(ripple effect)'의 파괴력이 2008년 가을의 양상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태국의 외환위기가 아시아를 강타하고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채무상환유예)에 이어 미국의 롱텀캐피털매지먼트(LTCM) 파산 위기로 번지는 데는 1년 이상이 걸렸다. 이에 반해 그리스 외채위기는 전세계 투자자가 그리스에 인접한 포르투갈의 국채와 미국 우량주식을 동시에 팔아 치우게 하고 있다. 미국 중산층의 재테크 수단으로 유럽 기업에 투자자금을 대줬던 머니마켓펀드(MMF)에서는 고객 인출이 시작되고 있고 한국의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 대비 달러가치는 폭등하고 있다. 뉴욕 증시의 두려움 지수인 VIX지수는 단 5일새 80% 이상 폭등했다.
다만 그리스 외채위기가 금융권의 대출 기피와 채권회수 등 글로벌 신용경색으로는 번지지 않고 있어 글로벌 금융 쓰나미로 비화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