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대 들어 과거 안정적인 관계를 보이던 통화량과 물가ㆍ경기 등 실물지표와의 관계가 크게 불안정해졌으며 이로 인해 통화량목표제의 유용성도 저하됐다는 인식이 한국은행에 확산됐다. 그러던 중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이를 계기로 한국은행은 물가안정목표제(Inflation targeting)를 도입하면서 통화정책 운용체계를 통화량목표제에서 콜금리 운용 방식으로 변경했다.
이러한 콜금리목표제의 도입은 이후 발생한 대우사태ㆍ카드사태 등과 같은 금융시장 위기시 기존의 통화량 관리 시절이었다면 어려웠을 유동성의 신축적인 공급을 용이하게 해 단기간에 거시경제 및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콜금리의 안정성에 치중해 상대적으로 그 시장성이 지나치게 제약되는 문제점이 나타나게 됐다. 콜금리는 금융기관들 간에 초단기로 거래되는 시장금리다. 그러나 한국은행이 제시한 목표 수준에 거의 고정되다 보니 시장금리로서 당연히 나타내야 할 금융기관의 자금 수급 상황을 나타내지 못하고 이로 인해 자율적인 자금 배분기능도 크게 약화됐다.
또한 콜금리가 극히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단기자금거래가 모두 익일물 콜거래로 집중되고 기일물 콜, 환매조건부채권(RP) 등 여타 단기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게 되면서 ‘콜금리→단ㆍ장기 시장금리’로 이어지는 금리 파급 경로의 원활한 작동도 제약됐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콜금리의 시장성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긴요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콜금리의 안정성이 저해되지 않도록 하는 것 또한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었다. 이에 더해 과거 통화량목표제하에서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던 제반 통화정책 수단도 금리 중심 통화정책에 맞춰 개선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에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통화정책 운용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 주요 내용은 정책금리를 콜금리목표에서 ‘한국은행 기준금리(약칭 기준금리)’로 변경하고 지준제도, 공개시장 조작 방식을 개선하는 한편 대기성 여수신제도를 도입하는 등 통화정책의 운용 목표 및 주요 수단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새 통화정책 운용체계는 오는 3월7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며 이후 금융시장에 많은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먼저 공개시장 조작의 정례화, 대기성 여수신제도 도입, 필요 지준 규모의 사전 확정 등으로 주요 통화정책 수단이 보다 단순ㆍ투명하게 운용되면서 통화정책 운용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커지고 이로 인해 통화정책의 신뢰성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동성 조절과 관련한 한은의 재량이 축소되는 대신 금융기관 자금 운용의 자율성이 강화되고 이로 인해 운용실적이 차별화되면서 책임성도 높아져 자금운용기법이 보다 고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콜금리의 변동성 확대로 금리변동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일물 거래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기일물 단기금융시장의 발달 여건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새 통화정책 운용체계는 금융시장의 안정 기반을 강화하는 데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 RP를 통해 필요시 유동성을 조절하는 한편 새로 도입되는 대기성 여수신제도를 통해 신용경색 등 금융시장 불안시 금리ㆍ만기ㆍ담보 등을 조정해 유동성을 원활히 공급할 수 있는 위기 대응장치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