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5월24일, 한미 양국이 경제조정협정을 맺었다.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 정부와 통일사령부간의 경제조정에 관한 협정’. 백두진 재무부 장관과 미국 특사 C.E. 마이어가 서명해 ‘마이어 협정’이라고 부른다. 한국과 미국이 전쟁의 와중에서 경제문제를 놓고 머리를 맞댄 이유는 크게 두가지. 한국은 유엔군에 빌려준 원화 자금의 상환을 원했고 미국은 통일사령부(유엔군 사령부)를 통해 제공되는 원조물자의 분배와 집행에 관한 틀을 세우려 했다. 협정의 핵심은 한미 합동경제위원회 설치. 말이 합동이지 경제주권은 사실상 미국에 넘어갔다. 합경위의 의사결정은 양국의 조정관이 협의하는 형식이었지만 실질적 결정권은 미국 측이 행사했다. ‘경제 대통령’으로 불렸던 역대 미국 측 조정관은 금융ㆍ물가ㆍ임금 등은 물론 수출입과 외환거래ㆍ환율 등 거시경제 정책을 주물렀다. 미국의 원조를 공장건설과 생산재 투자에 활용하고 싶었던 당시 경제관료들이 뜻을 꺾고 소비재 생산에 치중한 것도 미국 측 조정관의 입김 때문이다. 한국전쟁 직후 국내 산업의 중심이 최종 소비재인 삼백(三白ㆍ면직공업과 밀가루, 설탕)산업으로 편성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한국으로서는 불만이었지만 정부 재정의 40% 이상을 원조에 의존하는 구도에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 마이어협정은 정치사에도 흔적을 남겼다. 국제조약이었음에도 국회로부터 어떤 동의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점은 이후에도 한미간 협정 체결과 수정에 국회가 배제된 채 정부가 적당히 처리하는 관행을 낳았다. 마이어협정으로부터 55년이 흐른 오늘날 경제 여건은 과거와 비할 바가 아니지만 감추고 싶어하는 공무원들의 습성은 여전한 것 같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건 공개에서 기자실 폐쇄에 이르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