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남강유등축제와 지식재산권


지난해 11월 어느 밤 청계천 길을 걷는데 갖가지 등(燈)이 전시돼 있었다. 눈에 익은 모습이었지만 청계천이란 자리를 생각하니 생뚱맞았다. 원래 유등축제의 본고장은 진주이기 때문이다.

진주 남강유등축제는 1592년 10월 임진왜란 때 김시민 장군이 왜군 2만명을 맞아 싸울 때 남강에 등불을 띄운 데서 비롯됐다. 유등은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막는 군사전술과 진주성 병사들이 성 밖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도 쓰였다. 이듬해 전투에서 순절한 7만 민ㆍ관군의 애국 혼을 기리는 유등 풍습이 생겼다. 진주시는 1949년부터 유등놀이를 시작해 2000년부터 규모를 키워 축제로 치르고 있다.

진주 남강유등축제는 2012년 문화관광체육부로부터 한국 대표 축제로 지정됐고 이어 세계축제협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캐나다 나이아가라 빛 축제에 나가기로 협약을 맺을 만큼 세계 속의 축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진주시의 특성을 잘 살려 기획한, 진주시만의 독창적인 지식재산권인 셈이다.

사람이 머리를 움직여 만들어낸 모든 창작물을 보호한다는 게 지식재산권의 기본 정신이다. 지식재산은 크게 특허와 저작권으로 구분된다. 지식재산권은 개념을 보호하지 않는다. 그 개념에서 만들어낸 기술(특허)과 표현(저작권)을 보호한다. 저작권 보호 기간을 70년으로 늘리고 상표의 대상에 소리까지 포함하고 영업상 표지(트레이드 드레스)와 공표권(퍼블리시티권) 등으로 보호 범위를 더 넓혀나가고 있다. 등축제에도 여러 가지 지식재산권이 들어 있다.

등축제를 열겠다는 발상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발상을 실현하는 방법과 내용은 이미 나온 것과 달라야 한다. 서울시가 등축제를 새로 기획해 만들겠다는 것을 막을 순 없다.

그러나 청계천의 등축제가 남강유등축제와 방법ㆍ내용 면에서 엇비슷하다면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빌미가 될 수 있다. 등축제도 이런 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서울시가 하고 있는 등축제에는 진주시의 냄새가 강하게 나기 때문이다. 청계천의 등축제는 실망스럽다.

축제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실망스럽다. 청계천에 유등을 단다고 청계천이 남강이 될 수 없고 진주성 전투라는 역사가 서울 등축제에 들어갈 수 없다.

서울시가 아닌 누구라도 등축제를 기획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앞선 것을 '베낀 것'이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관점에서 서울만의 서울다운 '이야기가 있는 축제'를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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