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Story] 김기영 송산특수엘리베이터 대표

'나라에 필요한 일 하자' 어릴적 꿈이 엘리베이터 강소기업 일궜죠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에 자리 잡은 베르아델 승마클럽이 시원한 바다를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을 연상하게 한다.
/사진제공=송산특수엘리베이터


"고교 입학 후 대통령 독대 기회… 힘들때 '나라 기여' 말 되새겨"

도시화에 수직교통 급증 전망… 학창시절 승강기 공부에 몰두

세계1위 회사 입사, 승승장구… 120여개 달하는 기술 개발해

미국 본사 승진기회 뿌리치고 "내 국가에 복무" 창업 도전

혁신제품으로 특수엘리 선도… "글로벌 No.1으로 도약할 것"


지난 1960~1970년대 대전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모범생이던 한 소년이 있었다. 그런 그가 고교 진학을 앞두고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가구 사업을 크게 하던 부친이 경영상 어려움에 부닥치면서 일반고 진학을 포기한 것이다. 대신 그 소년이 선택한 곳은 충남기계공고였다. 당초 그의 인생계획에는 없었던 진로였지만 그곳에서 그는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을 맞닥뜨리게 된다. 수석 입학으로 진학한 덕분에 실업계 학교 격려차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독대를 하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 15분 남짓한 짧다면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라에 필요한 일을 하라는 대통령의 당부가 10대 소년의 가슴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이 만남이 그를 국내 엘리베이터 산업의 거목으로 키우는 계기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김기영(55·사진) 송산특수엘리베이터 대표의 이야기다.

"대통령과 마주 앉아 독대하는데 이런저런 질문을 하시다가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하시더군요. 지금도 가끔 사업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을 때면 대통령의 육성이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아요. 다녀가신 며칠 후에는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有備無患(유비무환)'이라고 쓴 대통령의 친필 휘호를 보내주셔서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가 일찌감치 엘리베이터에 주목한 것은 우리나라가 국토는 좁은 반면 급속히 진행되는 도시화와 인구 급증으로 수직 교통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고교 시절부터 승강기 관련 서적이라면 영어나 일어로 된 원서를 독파할 정도로 그의 관심은 온통 엘리베이터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는 본격적인 개발자 인생이 시작됐다. 운 좋게도 엘리베이터업계 세계 1위 회사인 오티스에 들어갔다. 당시만 해도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인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는 "하루에 잠을 4시간도 자지 않고 전 세계를 돌아다닐 정도로 엘리베이터에 빠져 살았다"며 "덕분에 약 120개에 달하는 기술 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한마디로 승승장구하는 인생이었다. 29세에는 수십 명의 연구원을 총괄하는 글로벌 기업 오티스 아태지역 연구개발(R&D) 담당이사로 승진했을 정도다.

하지만 몇 해 지나지 않아 인생의 가장 큰 고민에 빠지게 됐다. 그룹 회장의 남다른 아낌을 받은 덕택에 미국 본사 근무 발령과 해외 지사장 승진 코스가 내정됐다는 얘기를 듣게 된 것. 그는 "남들 같으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국가에 기여하는 인재가 되겠다는 신념을 저버리기는 힘들었다"며 "다른 나라가 아니라 내 나라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생각이 33세에 사업가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라고 소개했다.

김 대표는 일반 엘리베이터가 아닌 산업화에 기여하는 특수 엘리베이터에 매진하겠다고 결심하고 송산특수엘리베이터를 설립했다. '송산(松山)'이라는 이름은 그가 고등학교 시절 승강기 분야에 최고 권위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 만든 것이다. "소나무가 자라나는 산을 뜻하는 송산은 한민족의 터전인 국토를 상징합니다. 굳센 생명력을 자랑하며 인간에게도 유익한 소나무가 전 국토에 자라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는 없습니다. 소나무처럼 국가와 국민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는 포부를 담은 사명이라 할 수 있지요."

창업 초기에는 자금난 등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사업 기틀을 잡느라 동분서주하던 가운데 김 대표는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없는 현실에 의문을 품게 됐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 자체가 없었던 것. 때마침 민주화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화두가 되면서 장애인용 특수 승강기 사업을 정부에 직접 제안한다. 제품은 개발되자마자 전국 지하철 역사와 주요 기차역에 약 2,000대가 설치돼 신생 기업으로서는 보기 힘든 성장세를 이어나갔다. 비슷한 시기에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계실 없는 후측면 구동형 엘리베이터는 국가 핵심 자본재로 선정돼 설립 초기 경영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처럼 회사의 기틀을 잡은 후 송산은 2000년대부터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특수 승강기 분야에서 세계에서 보기 드문 혁신 제품을 선보이며 한국 엘리베이터의 역사를 새로 써왔다. 2002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인 지하 350m 경사형 48인승 셔틀을 제작해 DMZ 제3땅굴에 성공적으로 설치했으며 이후 세계 최초로 피난용 엘리베이터 개발 관련 특허를 획득하며 고층건물 화재시 인명을 구출하는 새로운 솔루션도 제시했다. 김 대표는 "단순한 수익을 생각하고 일반 승강기 시장에 진출했으면 많은 돈은 벌었겠지만 이처럼 세계적으로 눈에 띄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라며 "국내 엘리베이터 시장이 수입산에 점령을 당한 상황에서 특수 승강기 시장만큼은 송산이 세계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근에는 세계 최대의 골리앗 엘리베이터 개발과 납품에도 성공했다. 지금까지는 두바이공항의 100인승 엘리베이터가 제일 큰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에 송산이 개발한 신제품은 최대 35톤에 달해 500명의 인원을 동시에 태울 수 있다. 특히 눈과 비 등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20층 높이인 60m 구간을 엘리베이터로 이동할 수가 있어 해양플랜트 산업의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송산 역시 '글로벌 넘버원(No.1)' 특수 엘리베이터 회사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다. 그는 "올 들어 수출 국가가 대폭 늘어나며 기존 중동 지역 위주에서 벗어나 러시아·인도 등으로 성공리에 해외 진출이 진행 중"이라며 "매출이 올해 200억원을 넘어서고 내년에는 400억원까지는 무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별로 맞춤형 엘리베이터를 각각 공급해주는 것이 꿈이라는 김 대표는 "개성공단에도 이미 열 곳 정도에 송산 제품이 들어갔다"며 "우리 민족과 우리 강산을 위한 기업인 송산의 엘리베이터 기술이 북한에도 선보이는 날이 하루빨리 다가왔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말타면 집중력 향상"





승마 산업 육성 등 시장 활성화 앞장

김기영 대표는 스스로를 발명가라고 부른다. 어릴 적부터 유달리 발명에 관심이 많았다. 5세 때 바느질에 힘겨워하던 어머니를 위해 가는 전화선을 이용해 바늘귀에 실을 간편하게 넣도록 돕는 보조기구를 만들었을 정도. 현재까지 그가 갖고 있는 특허만 70~80개에 이른다. 이처럼 왕성하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비결이 무엇일까.

그는 주저 없이 '승마'를 꼽는다. 그는 "지금까지 출원한 모든 특허는 모두 말 등 위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움직이는 말 등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사인(sine) 곡선이 평소에 갖기 힘든 집중력을 낳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울러 말 위에서는 사고의 확장과 말과의 교감을 통해 마음을 읽는 능력과 인내심 향상 등 장점이 상당하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김 대표는 엘리베이터와 더불어 승마문화 회복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다. 그는 "일본 막부시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조선의 승마술을 배웠을 정도로 '체(體)·덕(德)·지(智)를 닦는 교육'으로서 승마를 가르친 역사는 한국이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유서가 깊다"며 "일제강점기 때 말살된 후 100년간의 공백기를 가진 국내 승마문화를 하루빨리 부활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2500년 전부터 동서양을 막론하고 체·덕·지를 기르는 대표적인 수단이던 승마는 동양에서는 군자가 갖춰야 할 여섯 가지 덕목인 예·악·사·어·서·수 중 하나로 꼽혔으며 서양에서도 기사도 정신의 으뜸으로 꼽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클래식 승마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클래식 승마 글로벌 리더 과정'과 학부생을 강단에서 직접 가르쳐온 국내의 몇 안되는 승마 전문가다. 지난 2003년에는 경기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에 베르아델 승마클럽을 설립하고 세계 최초 승마 전용 복합구조 실내 승마 스타디움을 건설했다. 세계 최대 규모인 약 110개의 마방과 마사 시설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클래식 승마 강습을 현재 제공하고 있으며 별도의 인재개발원 역시 갖춰 교육생과 방문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대부도 해안에 자리 잡은 베르아델은 2만여평의 잔디마당도 보유해 '꽃보다 남자' 등 인기 드라마 촬영 현장으로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는 "베르아델 승마클럽과 인재개발원의 방문자 수만 연간 7만~8만명 수준에 이른다"며 "구자열 LS그룹 회장과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등 사회 주요 지도층 인사들도 클래식 승마를 배우기 위해 많이 찾는다"고 귀띔했다.

그는 앞으로도 승마문화 확산에 앞장선다는 각오다. 김 대표는 "흔히 귀족 스포츠로 인식되는 승마지만 정작 승마를 즐기는 비용은 골프 비용의 절반도 안 된다"며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우리 선조들이 고등 승마술을 훈련했던 유서 깊은 대부도에서 베르아델이 승마문화 회복의 리더 역할을 톡톡히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He is…


△1960년 대전 △1979년 충남기계공고 △1984년 울산공과대 기계공학과 △1990년 오티스엘리베이터 아태지역 연구개발(R&D) 담당 이사 △1994년 송산특수엘리베이터 대표 △2003년 베르아델 승마클럽 대표 △2004년 경희대 체육학 박사 △2014년 한국엘리베이터협회 회장



사진=권욱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