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철강 달러 부족… 당일결제 어려워/불요불급한 해외 프로젝트 유보·축소외환시장의 마비속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미달러화에 대한 원화환율로 국내산업은 수출증대라는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도 못한 채 원자재값 급등·수출차질 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조선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내산업체들은 원화환율의 폭등으로 외화조달이 사실상 중단돼 불요불급한 해외프로젝트를 유보하거나 계획 자체를 아예 취소하고 있다. 환율폭등에 따른 국내산업의 고충을 업종별로 점검해본다.<편집자주>
◇정유=은행들이 달러를 배정해주지 않아 달러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원유구입비 등으로 업체당 월간 평균 달러수요가 10억∼20억달러에 달하지만 환율상승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물론 달러부족을 겪고 있는 은행들이 달러를 충분히 배정해주지 않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업계는 이같은 상태가 지속될 경우 12월께는 원유수입을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해외법인의 운영비, 접대비 등 당장 증명하기 곤란한 자금은 조달하기가 매우 어려워 해외지사의 경비지출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철강= 철강업체들은 철광석과 고철, 유연탄 등 대부분의 원자재를 외국에서 들여오고 있어 달러 구득난으로 인해 몸살의 정도가 매우 심하다. 특히 원자재인 고철을 절반이상 미국 등에 의존하면서도 수출이 거의 없는 전기로 업체들은 물품구입대금을 결제하느라 총력전을 펴고 있다.
이들 업체의 자금담당 부서들은 매일 은행에서 달러를 매입해 결제하고 있으나 달러 구득난에 따라 당일결제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 선물환 거래 등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있다. 우선 급한 불부터 끄자는 입장이지만 선물환시세가 너무 비싸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다. 대형 전기로업체들의 연간 고철수입액은 5억∼6억달러선. 그러나 제품수출액은 1억달러 수준에 그쳐 그 차액만큼이 고스란히 환차손 발생대상이 되는 셈이다.
◇자동차=환율급등에 따른 환차손이 우려되지만 외화자금결제에는 다른 산업에 비해 크게 어려움은 없다. 수출대금을 원화로 바꾸지 않고 보유하고 있다 수입대금으로 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화가치하락을 이유로 현지딜러들이 자동차가격인하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어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환율이 급격히 오르고 있으나 언제 다시 떨어질지 몰라 가격조정에 상당히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사업은 가급적 투자시기를 뒤로 미루고 있으나 역시 여의치 못한 상황이다.
◇정보통신=외국으로부터의 장비 및 부품도입이 많은 정보통신업체들은 수입결제자금을 하루하루 은행에서 차입,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외국은행들이 한국의 신인도하락을 이유로 추가금리를 1%포인트 더 요구하고 있어 사실상 조달이 막혀 있다. 이들은 수입대금결제용 외화자금조달이 더 어려워질 경우 앞으로 사업이 엄청난 차질을 빚을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전자·반도체=매년 시설을 새로 바꿔야 하는 반도체업체들은 원화가치절하의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제품수출의 경우 대개 장기계약으로 이뤄지고 있어 환율급등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반면 장비도입에는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형편이다. 특히 일부 업체들은 신규사업계획에 필요한 금융기관의 외화자금지원을 받지 못해 차질을 빚고 있다.
전자업체들은 지난 96년 8백40원대를 유지하던 원화의 대미달러환율이 18일 1천12원80전까지 치솟으면서 발생한 15%이상의 재료비상승 추가부담을 고스란히 떠 안아야 할 처지다. 이에따라 삼성·LG전자 등은 자재부 등 구매부서를 중심으로 대금결제통화를 달러에서 엔화 및 마르크화로 전환, 피해최소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섬유=수출비중의존도가 높아 일단 환율상승에 환차익을 보고 있지만 원자재 수입부담도 적지 않아 환율상승이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수출대금을 달러로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어 수입대금 결제에는 전혀 지장을 받지 않고 있다.
다만 화섬업체의 경우 대규모 시설투자가 수반되는 장치산업인 탓에 화섬업체마다 내년도 시설투자와 예산편성에 애를 먹고 있다. 예를들어 한국합섬은 미국에 폴리에스터 원사공장 건립을 추진하려 했으나 최근 환율폭등과 자금조달상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브레이크가 걸렸다. 효성T&C도 내년에 예정했던 나일론 설비증설계획을 일단 유보했다.<산업1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