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유럽연합(EU)의 자유무역협정(FTA)이 3년 넘도록 표류해온 한미 FTA의 촉매제가 될지 주목된다. 한국과 미국은 오는 10~11월 한미 FTA 실무협의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어서 한ㆍEU FTA 일정이 확정된 것이 FTA 비준을 반대해온 미국 측을 압박하는 지렛대 효과를 가져온다는 분석이다. 실제 한ㆍEU 양측이 10월6일 한ㆍEU FTA 정식 서명식을 갖고 내년 7월1일 잠정 발효하기로 발표한 후 미국에서는 한미 FTA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한ㆍEU FTA가 선제적으로 발효될 경우 한국 시장을 EU에 선점당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아쉽지만 그래도 성공적=대다수 통상 전문가들은 한ㆍEU FTA 발효가 내년 7월로 당초 계획(올 12월)보다 6개월 지연된 것에 대해 FTA 효과가 조금 늦어지기는 하지만 정확한 날짜를 확정지은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막판 이탈리아의 '몽니'에도 협정문 수정 없이 합의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잠정발효 1년 연기를 주장해왔다. 2011년 7월1일이라는 구체적인 날짜는 양측이 의회(국회) 비준을 진행함에 있어 책임의식을 갖게 하는 효과도 가져온다. 즉, 6개월 늦은 발효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최낙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EU가 대외적 조약을 체결할 때 일부 회원국들의 반발에 따라 발효가 다소 지연되는 것은 종종 발생하는 일"이라며 "예정대로 진행됐으면 우리 경제에 더 도움이 됐겠지만 아예 무산되거나 몇 년 늦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미국 드디어 움직일까=마이크 조핸스 미 상원의원은 최근 상원 본회의에서 "EU 기업들이 한국 시장 접근을 위해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있는 동안 미국은 한국과의 FTA 비준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를 질타했다. 론 커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지난 22일(현지시간) "우리는 11월 서울에서 열릴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때까지 미해결 쟁점들을 해소하고 수개월 내에 비준안을 의회에 제출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러한 발언들은 EU 이사회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외교소식통들은 한ㆍEU FTA 잠정발효가 7월1일로 확정된 뒤 미국이 한ㆍEU FTA 협정문을 조목조목 짚어보며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ㆍEU FTA가 먼저 발효될 경우 한국 시장을 선점당할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서는 최혜국대우(MFN)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혜국대우'란 서로 본 협정 체결 이후 각기 다른 협정에서 타국에 더 유리한 혜택을 줄 경우 자동으로 추가 혜택을 부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 한ㆍEU 모두 협정문에 이 조항이 삽입됐다. 한ㆍEU FTA는 서비스 등 일부 분야에서 한미 FTA보다 높은 수준(코러스 플러스)의 개방에 합의했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더 지체할 경우 자칫 이 조항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철저한 대비의 시간으로 활용해야=한ㆍEU FTA 6개월 발효 지연은 유럽 업계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주어진 시간이다. 그들이 자동차 산업 구조조정 및 한국 자동차 진입 대비책을 마련한 시간을 번 것만큼 우리도 EUㆍ미국 등 거대 경제권과의 FTA 발효 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정부가 각 FTA별 보완대책을 마련했지만 동시다발적인 FTA에 대비한 종합대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EU는 협정문을 근거로 FTA 발효 후 소형 승용차를 포함해 민감한 산업 부문에서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이 급증할 때 보호장치를 제공하는 세이프가드 이행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의 경쟁력으로 자국 업체의 피해를 호소하는 이탈리아 등의 우려를 덜어주기 위한 장치다. 특히 내년 말이면 EU 및 미국과의 FTA가 동시에 발효될 가능성이 높다. 양측이 공통적으로 노리는 국내 자동차 시장 등에 대한 사전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오승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과 EU가 동시에 경쟁력이 강한 부문에서 몰려오면 우리도 부담될 것"이라며 "동시다발적인 FTA 추진과 함께 업종별 대응책을 새롭게 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