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논쟁만 할건가

“독특한 스타일에 튀는 연설. 고이즈미 극장의 인기는 끝이 없다. 말 그대로 버라이어티 쇼 정권이다.” 2년전 이맘때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표현이다. 돌출 행동에 탤런트적 기질이 다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2년 통치 평가서는 그러나 실로 초라하다. 금융권의 부실은 국가를 파탄의 위기 상황으로 내몰고 국민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 집권초 개혁을 부르짖으며 화려하게 펼쳤던 고이즈미의 정치 퍼포먼스는 결국 이벤트로 끝나고 남은 건 `좌초하는 일본호`다. TV앞 토론ㆍ정치, 이른바 텔레 폴리틱스(Telepolitics)`의 대가라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 TV는 물론 인터넷 정치에도 일가견을 가진 노무현식 `참여 정치 퍼포먼스`가 그러나 고이즈미보다는 한 차원 위로 보인다. 젊은 검사들이 최고 권력자와 `맞장을 뜨는` 토론은 이 나라 젊은 층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주었고 실효성이야 어쨌든 인터넷을 통한 인사는 밀실정치의 장막을 걷어내는 `파격`으로 비쳐졌다. `토론의 달인`이란 세간의 평가대로 하는 말마다 화제를 몰고 다닌 대통령의 `스타성`은 방미 중 극적 국면 전환으로 또 한번 주목을 끌었다. 실용이냐 굴복이냐, 대통령의 방미 행보에 대한 시시비비는 때늦은 얘기다. 반미의 구호를 앞세우며 이벤트와 인터넷에 익숙한 비디오 세대, 근대화의 그늘에서 소외됐던 계층 -노짱 최대의 지지그룹인 이들에게 정치 변방이 아닌 청와대속 노무현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는 가가 눈앞의 걱정거리다. 그 같은 우려는 당장 지난 18일 광주에서 표출됐다. 모든 목소리에 대한 여과 없는 수용이 국가 기강 해이로 직결,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가 표류하고 고질적인 지역 갈등에 세대간 갈등까지 더해져 사회의 위계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정치가 그나마 반 발짝 떨어진 거리에 있다면 금이 간 경제는 서민들에겐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게다가 북핵이란 생사여탈의 난제가 앞에 놓인 시국은 대통령이 중심을 못 잡으면 온 나라가 들썩일 수 밖에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자조적ㆍ냉소적 비주류에서 시대를 책임지는 주류로서의 대통령의 변신이 결코 `변절`로 치부될 수 없음은 바로 이 같은 상황 논리가 그 근거다. 특정 계층이든 세대건 혹은 선의든 악의든 대통령의 지지그룹에 볼모가 되는 우(愚)가 등장인물과 성격만 바뀌어 역사에 또 다시 반복되는 건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대통령 주변 가신 그룹들에 의해 정치가 농단됐던 과거사가 반면교사(反面敎師)라면 국익을 위해 좌파의 틀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세계 금융시장으로부터 신뢰를 끌어낸 브라질 룰라 대통령의 변신 사례는 교훈이다. “대통령자리 못해 먹겠다”라는 노 대통령의 탄식이 공식석상에서 터져 나온 게 그제다. 세상 사람들의 입이 두려워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고 대통령이 모든 일을 챙겨야 하는 상황이 지금 이 나라가 빠져든 현실이다. 절충 없는 논쟁-이 비효율의 평행선을 언제까지 그려갈 것인가. 정치의 장(場)에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늘 문제다. 이 나라 민초들이 진정 보고 싶어하는 건 입만 열면 개혁의 구호만을 부르짖는 지도자들의 공허한 말의 성찬도, 버라이어티 정치 퍼포먼스도 아니다. 바로 현실과 이상 사이 간격, 그 밸런스를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절묘하게` 맞춰 나갈 줄 아는 지도자의 혜안과 능력이다. 인기주의의 마(魔)로부터 국가 경영자들이 벗어나야 하는 지금은 결단의 시기다. <홍현종(국제부장) hjh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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