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당좌거래를 이용한 딱지어음사기는 선의의 어음거래자들을 연쇄부도로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금융회사의 공신력 유지 및 건전한 신용질서 확립에도 역행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근절돼야 할 문제다.
그러나 거래기업에 대한 철저한 어음관리를 통해 이를 미연에 방지해야 할 은행들은 허위로 제출한 거래실적 등에 속아 어음을 과도하게 교부하는 등 결과적으로 사기단들의 딱지어음 확보를 방조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뒤늦게 딱지어음 유통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들을 내놓았지만 사기수법이 갈수록 대형화ㆍ지능화하고 있는데다 일부 은행 영업점장들의 경우 아예 사기단과의 결탁해 대량으로 어음을 발급해 주는 경우도 적잖아 문제가 되고 있다.
◇대형 딱지어음사기 빈발=검찰ㆍ경찰ㆍ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모 은행 여의도지점장 최모씨는 지난 98년6월부터 올 1월까지 딱지어음 사기단이 운영하는 위장회사 명의로 당좌를 개설해 주고 수차례에 걸쳐 1,800만원의 사례비를 챙겼다가 쇠고랑을 찼다. 이 사기단은 이 같은 거래를 이용해 무려 5,000여장의 딱지어음을 받아 시중에 유통시켜 1,000억원대의 사기를 쳤다. 지난해에도 한 시중은행 석촌동지점의 당좌거래처인 모종합통상이 계획적으로 어음용지를 과다발급받아 불법으로 유통시켰다가 적발됐으며 또 다른 유령회사는 3개은행에서 어음용지 600장을 교부받아 장당 150만원에 할인해 시중에 유통시킨 혐의로 기소됐다.
◇은행 당좌거래ㆍ어음관리 소홀=금감원이 각 은행을 대상으로 어음용지 교부 및 운영실태를 점검한 결과 상당수 은행들은 국가기관 및 공공기관 외에 신용상태 등이 양호한 기업에 대해서는 점포장 승인으로 적정량을 초과해 어음을 교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결국 점포장들은 마음만 먹으면 신용상태가 좋다는 이유 등으로 어음책을 얼마든지 교부할 수 있는 것이다. 은행들은 또 기업이 당좌거래를 2개 이상의 은행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거래은행에서 발급받은 어음수량을 살피지 않은 채 어음을 교부하고 있다. 또 은행이 적정한 어음교부량을 산출할 때 적용하는 미제시어음(은행에 결제가 돌아오지 않은 어음)에 대한 심사도 형식적으로 하는 등 어음관리 역시 소홀한 실정이다. 금감원 당국자는 “한 두개 은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은행들이 어음용지교부 등에 관해 내부통제가 미흡하다”고 말했다.
◇금감원, 어음발행남발 대책시달=금감원은 은행들의 어음관리가 이처럼 소홀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은행간 어음정보 교환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을 긴급시달했다. 금감원은 우선 금융결제원이 어음발행 남발을 막기 위해 지난 2000년10월 구축한 `어음정보시스템`을 이용해 다른 은행의 어음발행 상황을 감안해 어음교부량을 산출하도록 했다. 또 은행에 제시되지 않은 어음의 수량이 일정기준(예 100장)을 넘을 경우에는 현장조사를 통해 유령회사 여부를 확인하도록 관련지침을 개정토록 했다. 아울러 어음용지 과다교부 여부에 대한 내부통제 강화를 유도하기 위해 각 은행 검사부의 자체 전산상시감시 및 영업점의 일상감사 항목에 어음교부 실태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했다. 금감원은 앞으로 각 은행에 대한 검사 등을 통해 어음용지 관리가 소홀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관련직원은 물론 해당기관에 대해서도 엄중 문책하는 등 관리감독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이진우기자 rai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