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초기에 아군이 제공권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 등 연합군을 승리로 이끈 전투기가 있다. 1인승 단발ㆍ단엽 전투기 P-51 머스탱이 바로 그 기종이다. P-51은 미국이 2차 세계대전 말기에 독일 전투기 메서슈미트를 대적하기 위해 설계ㆍ제작한 당시 최신식 전투기로 지난 1942년 전투에 첫 투입됐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3,000대분의 비행기 부품은 창고에 쌓이게 됐다. 미국은 한국을 위시한 우방국들에 P-51기를 무상 공급하거나 민간 항공 애호가들에게 싼 값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한국 공군이 창설 후 처음 보유한 전투기가 P-51인 것도 이 때문이다. P-51은 1946년 F-51로 이름을 바꿨고 지상공격용(A-36), 공중사진정찰용(F-6)으로 개조되기도 했다. 참사 막아낸 영웅 지미 리워드 한국전쟁 당시 우리 공군 조종사들은 불과 몇 시간의 조종교육만 받고 출격해 빛나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상하이(上海) 임시정부 시절 우리 독립군도 중국 공군에 위탁해 P-51기 조종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은 고(故) 김구 선생의 아들이자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신 장군인데 한국인 최초의 P-51기 조종사다. 미국의 사막지대인 네바다주 리노에서는 매년 추억의 전투기들이 비행속도를 겨루는 '내셔널 챔피언십 에어레이스'가 열린다. 각지에서 P-51기들이 날아와 참가하는데 그 숫자가 많아 이틀 동안 예선을 치르고 3일째에 결승전에 들어간다. P-51기는 옛 소련의 야크 전투기를 포함해 세계 모든 프로펠러 기종이 참가하는 속도 경기에서 해마다 1~3등을 석권하고는 한다. 요즘 비행 가능한 P-51기는 100만달러가 넘기 때문에 대회 참가자들은 시간적 여유와 비싼 취미를 뒷받침할 만한 넉넉한 재산을 가졌고 대부분 연령도 높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올해 에어레이스에서는 3일째인 9월16일 세 번째로 날던 조종사 지미 리워드(74)가 몰던 P-51기가 추락, 60여명이 사상을 당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리워드는 사고 직전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 비행기가 관중들이 밀집한 곳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안간힘을 다해 수직상승을 시도,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를 막아 영웅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다만 주최 측은 지난 수년 동안 이러한 사고 발생 위험성에 대한 경고를 계속 받아왔으면서도 이를 무시, 참사를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경기 도중 엔진이나 기체 고장이 감지되면 조종사는 안전을 위해 고도를 최대한 높여 착륙 가능한 지점으로 글라이딩해야 한다. 이번 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조종사 본인 아니면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처음 상승했을 때 기체의 어느 부분에 결함이 있는지 감지했을 것이다. 상승 후 급강하할 때는 이미 기체가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들이 많다. 기령(機齡) 60년을 넘는 비행기였고 원래 설계속도(최대시속 703㎞)를 훨씬 넘는 시속 805㎞로 날자면 비행기에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비행기마다 속도 계기판에는 넘어서는 안될 한계속도가 표시돼 있지만 경기용으로 날려면 이를 훨씬 넘겨야만 한다. 예방조치 통한 일반항공 장려를 해마다 각종 에어쇼 등에서 비슷한 추락사고가 생겨 미국 연방항공국(FAA) 등에서 조사를 하고는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만 관중들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드는 큰 경기인데다 참여 조종사들은 장기간 병원이나 요양소 신세를 지는 것보다 사랑하는 애기(愛機)와 함께 영원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훨씬 행복하게 여긴다고 한다. 안전사고 예방조치를 강화해 한국도 추억의 일반 항공을 장려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