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전 8시 서울 강남역 중앙버스전용차로 인근 도로에선 아찔한 장면이 연출됐다. 출근 시간이 촉박한 일부 시민들이 중앙 버스 정류장에서 하차한 뒤 무단횡단을 통해 도로를 건넜기 때문. 다행히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자칫하다간 차량과 부딪힐 수 있는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강남역 중앙버스전용차로는 이처럼 매일 출근시간대에 교통사고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다.
서울시의 전체 교통사고는 줄고 있는데 비해 중앙버스전용차로 사고는 증가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중앙버스전용차로가 버스의 수송 분담률을 높이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교통 안전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어 재정비가 필요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노근(새누리당) 의원이 도로교통공단과 서울시·경기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서울과 경기도의 중앙버스전용차로에서 1,381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41명이 숨지고 3,442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0년 299건, 2011년 265건, 2012년 470건, 지난해 347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같은 기간 연도별 사상자 수는 각각 789명, 709명, 1,247명, 738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사고의 73%는 서울에서 발생했다. 서울 중앙버스차로에선 최근 4년간 1,050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31명이 사망했고 2,522명이 부상을 입었다. 자치구별로는 서대문구의 사고 건수가 182건, 사상자가 43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은평구(127건, 346명), 강남구(87건, 219명)가 뒤를 이었다.
서울시는 특히 전체 교통사고가 줄고 있지만 중앙버스전용차로의 교통사고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 도로교통공단 교통과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서울시의 교통사고 발생 건수와 사망자 수는 각각 4만451건, 435명으로 집계됐다. 2012년 발생 건수와 사망자 수는 4만829건, 424명으로 이보다 감소했다. 하지만 중앙버스전용차로의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011년 179건(사망자 3명)에서 2012년 398건(사망자 14명)으로 급증했다. 중앙버스전용차로의 치사율은 2012년 기준 3.52%로 서울시 전체 교통사고 치사율(1.04%)보다 크게 높았다.
이처럼 중앙버스전용차로에서 사고가 증가하는 이유는 교통체계운영 문제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난 2012년 기준 중앙버스전용차로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 사고는 차량과 차량이 부딪친 것으로 모두 292건 발생했다. 차량과 사람이 충돌한 사고(85건)의 3배가 넘는 수치다. 심관보 교통과학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앙버스전용차로의 특성상 좌회전 교통 신호체계와 마찰이 발생한다"며 "차량끼리 부딪치는 사고의 65%는 교차로에서 좌회전을 하는 일반차량과 중앙버스전용차로에서 직진하는 버스가 충돌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행자의 무단횡단 사고도 심각하다. 중앙버스전용차로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의 44%는 건널목 인근에서 발생했다. 서울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반 보행자의 58.3%가 건널목에서 무단횡단을 한 경험이 있다고 답할 정도로 보행자들의 의식전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밖에 심야버스의 과속, 이륜차의 무단통행 등이 중앙버스전용차로에서 사고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중앙버스전용차로의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교통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직진하는 버스와 좌회전하는 일반 차량과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 피턴(P-turn) 방식의 체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심 위원은 "중앙버스전용차로가 설치된 경우 일반차량의 좌회전은 가급적 금지하고 피턴을 설치해 교차로와 상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건널목 신호운영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심 위원은 "교통사고 사망사고 가운데 절반 가까운 사례가 보행자의 무단횡단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무단횡단 시도를 막기 위해 방호 울타리 등 물리적인 시설물을 보완하고 건널목의 신호주기를 단축해 보행자들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