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거대 시장에 책을 팔기 위해 중국 당국의 검열을 받아들이고 책 내용을 수정한 외국의 유명저자들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1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의 대표적인 중국 전문가 보겔 교수가 집필한 개혁개방노선 시대 중국 최고실력자 덩샤오핑의 전기 '덩샤오핑과 중국의 변화'(Deng Xiaoping and the transformation of China)는 지난 1월 중국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이 삭제된 채 중문판을 펴냈다.
가령 중문판은 1980년대 후반 중국 언론이 동유럽을 휩쓴 공산주의 내부 붕괴를 보도하지말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뺐다 .
또 톈안문 사건으로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 전 당 총서기가 가택연금을 당할 때 눈물을 흘힌 사실도 번역판에서는 삭제됐다. 이외에 덩샤오핑이 옛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국빈만찬 도중 톈안먼 광장을 점거한 대학생들에 대한 두려움 탓인지 젓가락으로 경단을 집다가 떨어트렸다는 내용도 빠졌다.
보겔 교수는 책 홍보를 위해 중국을 방문하는 동안 중국 측 검열을 허용한 것은 “불쾌하지만 필요한 거래”였다며 서방 작가들이 엄청난 독자에 다가서기 위해선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해명했다.
중국 당국의 검열을 수용하고 출판했기 때문인지 보겔 교수가 2011년 쓴 책은 미국에선 3만 부 정도만 나갔지만, 중국에서는 65만 부나 팔렸다.
마이클 메이어가 2008년 펴낸 '옛 베이징의 마지막 날들'(The Last Days of Old Beijing)은 베이징의 역사 유적 파괴를 다뤘다.
작년 중국에서 나온 중문판에는 톈안먼 유혈 진압이나 중국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가 베이징시를 신랄히 비판한 내용이 사라졌다. 또 제목도 옛 베이징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문구로 바뀌었다.
뉴욕타임스는 이들 사례를 열거하며 작가와 출판사들이 중국에서 책을 많이 팔려고 약 5년 전만 해도 거의 없던 이런 타협이 점차 흔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높은 문자해득률을 자랑하는 중국에서 외국 작가의 작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중국 시장은 미국 출판업계에는 막대한 수익원이 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출판업자들이 중국에서 전자책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56%나 급증했다.
중국 출판사가 외국에서 사들이는 판권은 1995년 1,664건에서 2012년에는 1만6,000건으로 대폭 늘었다.
'해리 포터' 작가 J K 롤링은 인세로 중국에서 240만 달러를 벌었고, 스티브 잡스 자서전을 쓴 월터 아이작슨도 80만달러를 챙겼다.
그러나 모든 저자들이 중국 당국의 검열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었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자서전 '살아 있는 역사'(Living History)에서 많은 부분이 자신과 상의 없이 삭제된 것을 발견하고 중문판을 거둬들였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의 '격동의 시대'(Age of Turbulence)도 원저의 대폭적인 첨삭을 그가 거절하면서 출판이 보류됐다.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제임스 킹은 저서 '중국이 뒤흔드는 세계'(China Shakes the World: A Titan's Rise and Troubled Future? and the Challenge for America)의 한 장을 드러내자는 중국 출판사의 요구에 “중국 시장에 접근하려고 지극히 위선적 선택을 할 수 없다"며 중문판 발간을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