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출 금융기관 정리 '세월아 네월아...'

지난해 영업정지를 당한 뒤 파산절차를 밟고 있는 한 종금사 사무실.직원 8명이 출근해 서류작업을 하고 있다. 이 회사의 정리를 위해 당초 투입된 인원은 15명. 그러나 7명은 집안일 또는 다른 직장을 알아보기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다. 파장 분위기임이 역력하다. 파산관재인은 모 법률사무소의 K변호사. 직원들은 『변호사 얼굴을 보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가끔 「무슨 일 없느냐」고 전화는 오지만 파산업무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파산절차가 늦어지면 우리도 그만큼 월급을 더 타니까 좋지만 무위도식하는 변호사가 얄밉더라구요.』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간판을 내린 종금사는 모두 16개. 파산관재인으로는 모두 변호사가 선임돼 있다. 그러나 이들 변호사가 정리업무는 소홀히 한 채 제 잇속만 챙기는 경우가 많아 퇴출 금융기관을 신속히 정리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파산관재인을 꼭 변호사에게 맡겨야 하느냐」는 회의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현행 파산법에 따르면 종금사가 파산단계에 돌입하면 법원이 관재인을 선임토록 돼 있다. 관재인은 퇴출 종금사의 채권과 채무 등을 분류한 뒤 자산을 정리해 회사를 완전히 없앨 때까지 총지휘를 맡는다. 그러나 일부 법무법인이 소속 변호사의 경력관리를 고려, 재무제표도 볼 줄 모르는 비전문가를 파견하는가 하면 변호사는 파산재단에 소송이 제기되면 이를 소속 법인에 유치시키는 등 「잿밥」에만 눈독을 들이는 사례가 불거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종금사 정리가 차일피일 늦춰지고 있다. 금융당국도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지만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질 것을 우려, 개선안 마련을 주저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변호사들이 퇴출 종금사를 하루 빨리 정리할 생각은 하지 않고 곁가지 이익만 챙기는 데 관심을 쏟고 있어 지금 같은 제도에서는 국민들의 부담만 늘어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금융전문가를 청산인과 관재인으로 선임해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법원이 변호사 선임을 고집하는 바람에 금융당국이 청산법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16개 종금사의 퇴출에 160억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변호사 수임료와 직원들의 인건비가 대부분이다. 5개 은행 파산에도 130억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종금사와는 달리 상호신용금고는 금융전문가를 청산인으로 발령낸 뒤 파산절차에 돌입하면 금감원의 추천을 받아 법원이 선임토록 하고 있다(상호신용금고법·구조개선법). 5개 퇴출은행의 경우 청산절차 없이 파산에 들어가 변호사와 금감위 파견직원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구조개선법·은행법). 같은 금융기관이지만 제각각 다른 제도와 기준이 적용됨으로써 일목요연한 퇴출작업이 이뤄지지 못하고 중구난방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금융기관 정리를 신속히 하기 위해서는 통합 전담기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퇴출 금융기관별로 남은 자산을 한꺼번에 모아 매각하고 채권도 집중 회수함으로써 정리기간을 대폭 단축해야 한다는 것. 정부의 한 당국자는 『지금처럼 각 금융기관별로 파산절차를 진행시킨다면 3~4년이 지나도 정리를 끝내지 못하는 곳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기업이 부도를 내면 금융기관을 비롯한 채권단이 청산절차를 주도할 수 있지만 채권자가 불특정 다수인 금융기관이 파산할 경우 자산처분을 책임질 기관이 없어 빨리 매듭지을 수 없고 사회적 비용만 양산할 것이란 지적이다. 미국에서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파산 금융기관의 주채권자 자격으로 관리업무를 맡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금융기관의 퇴출이 법적 절차임에는 틀림없지만 이에 따른 경제적 요인도 적극 감안해 종합적인 관리와 자산처분을 주도할 수 있는 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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