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에서 내부 검토를 거쳐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반도체 없이 생존하는 법을 이미 터득했다.” LG전자 정기주총이 열린 14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남용(사진) LG전자 부회장은 주총을 마친 후 기자들로부터 하이닉스 인수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자 단호한 표정으로 이같이 잘라 말했다. LG 최고경영진이 하이닉스 인수를 내부적으로 검토했다는 사실까지 거론하며 인수 포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 부회장은 “하이닉스를 인수하지 않겠다는 것이 구본무 회장의 분명한 뜻이냐”는 거듭된 질문에는 “직접 물어보라”고 할 정도로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그룹 안팎에서는 그동안 구 회장의 오랜 숙원사업인 반도체사업 진출과 관련, LG가 결국 하이닉스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LG는 지난 1998년 빅딜 과정에서 원치 않게 반도체 부문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에 넘겨주게 돼 반도체사업을 포기하게 됐다. 구 회장은 이 과정에서 실무작업을 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발길을 끊을 정도로 매우 애석해 했다는 점을 들어 LG의 ‘권토중래’ 가능성에 무게가 실려왔다. 따라서 이번 발언은 이 같은 논란에 쐐기를 박는 것이자 이미 그룹의 중장기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밑그림이 완성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LG가 고심 끝에 반도체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면서 “한동안 고전하던 LG가 ‘마이 웨이’를 선언할 만큼 자신감을 되찾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게 아니냐”고 진단했다. 실제 LG그룹은 지난해 전자와 화학 등 핵심 계열사마다 사상 최대의 경영성과를 나타내는 등 급속히 파워를 키워가고 있어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날 주총에서도 남 부회장은 이례적으로 직접 파워포인트를 활용해가며 “사업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꿔 5년 후 고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로 바꾸겠다”고 미래 사업전략을 설명하는 등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남 부회장은 특히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디스플레이사업과 관련, “지난해 4ㆍ4분기에 손익분기점에 이르렀으며 올해 상반기 중 턴어라운드를 실현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제조원가를 낮추고 수익성 높은 제품 중심으로 재편하겠다”고 설명했다. 신수종 사업에 대해 남 부회장은 “LG전자와 함께 LG화학ㆍLG디스플레이 등 계열사들이 태양전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그룹 차원에서 조만간 정리될 것”이라면서 “올해 태양전지 등 미래 먹을 거리 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실적이 저조한 부문에 대한) 사업 철수를 비롯해 아웃소싱도 확대할 것”이라고 비전을 소개했다. 남 부회장은 이어 “사업을 진행 중인 전세계 140여개국에서 깊이 뿌리 박을 수 있도록 현지인 채용에 나서 각국의 모든 수장이 한국인인 현 체제를 바꿀 것”이라며 “글로벌 표준을 지향해 언어와 시스템을 통일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