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갈곳 못찾고 갈팡질팡
물가 급등 실질금리 마이너스폭 확대부동산·주식도 불안 채권으로 눈돌려해외투자 문의 급증…자본유출 우려도
시중자금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부동화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조흥은행 부동자금유치팀이 5일 본점 영업부에서 고객들을 대상으로 상품 판촉전을 벌이고 있다. /이호재기자
국세청에 다니는 이모씨는 "알토란 같이 모은 적금 5,000만원을 정기예금에 넣으려 했더니 한달 이자가 13만원밖에 되지 않아 포기했다"며 "주식이나 투자상품 등 리스크가 많은 곳에 넣기도 꺼림칙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으로 실질금리의 마이너스 폭이 확대되고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시중자금의 부동화가 심해지고 있다. 지난 5월 4%대 초반이던 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3.8%까지 떨어졌다. 국민은행에 1억원을 맡기면 받을 수 있는 세후 이자소득이 317만원으로 몇 달 새 50만원 가량 줄었다. 은행에 가지 못한 뭉칫돈은 단기적으로 시중은행의 머니마켓펀드(MMF)에 들렀다가 채권시장으로 몰리고 있다. 그러나 국내시장에서 재미를 보지 못할 경우 해외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7월 말 현재 국민ㆍ우리ㆍ하나ㆍ신한ㆍ조흥ㆍ외환ㆍ제일ㆍ한미 등 8개 시중은행의 MMF 잔액은 13조3,629억원으로 전월보다 12.91% 늘었다. 이는 6월의 전월 대비 8.70% 증가보다 4.21%포인트나 높은 것으로 시중자금이 빠르게 MMF 시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비해 수익성이 낮은 정기예금 잔액은 7월 말 현재 182조6,429억원으로 전달보다 0.05%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씨처럼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바에야 굳이 은행에 돈을 넣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갈 곳을 잃은 부동자금의 또 다른 투자처는 채권시장이다. 실제로 채권형 펀드 수탁액은 4월 말 54조원에서 7월 말에는 62조원으로 8조원이나 증가했다. 한 달에 2조원을 넘는 돈이 채권투자로 옮겨간 셈이다. 같은 기간 은행의 실세 총예금은 509조6,120억원에서 504조6,850억원으로 5조원 가량 줄었다. 고객예탁금은 10조3,870억원에서 7조7,510억원으로, 주식형 펀드 수탁액은 8조2,580억원에서 7조9,370억원으로 감소하는 등 주식시장에서 발을 빼는 투자자가 많았다.
한상언 신한은행 재테크팀장은 "저금리 추세가 지속될 전망이기 때문에 간접투자상품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포트폴리오 중 예금보다는 투자상품에 대한 비중을 늘리는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시중 실세금리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과 국내경기가 돌아서기 쉽지 않다는 우려감이 확산되면서 일부 부동자금이 채권시장에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올 상반기 한국에서 대규모 돈이 빠져나가며 미국 로스앤젤레스 등지의 부동산 가격이 3~4년 전보다 2~3배나 올랐고, 금융감독원이 거액 외화반출을 조사하겠다고 밝혀도 자금이탈을 막을 수 없다는 게 현지업계의 분위기다. 실제로 6월 자본유출 초과액은 IMF 외환위기 이후 최대치인 22억2,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한 외국계 은행의 마케팅 담당자는 "주식과 채권을 오가던 국내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거주자외화예금이나 해외채권ㆍ부동산 등에 대한 투자문의가 크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우승호기자 derrida@sed.co.kr
김민열기자 mykim@sed.co.kr
입력시간 : 2004-08-05 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