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개각보다 중요한 것

경제부 민병권 차장

대망의 6ㆍ4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이제 세간의 이목은 온통 개각 여부로 쏠릴 것이다. 정부조직 개편도 함께 따라붙을 이슈다. 그 사정권에 오른 인사들을 중심으로 관가와 정가는 술렁이고 있다. 이미 온갖 복도통신들이 난무한다. 행정부 수반을 비롯해 그 참모들의 속내는 훨씬 더 복잡할 것이다.

흔히 인사가 만사라고 한다. 그런데 안타깝지만 지금의 나라형편은 각료 몇 사람, 대통령 참모 누구, 부처 몇 곳 물갈이한다고 풀리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는커녕 대통령 스스로조차도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정책환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은 이미 행정부를 떠난 지 오래다. 힘은 정부에서 의회로, 사법부로, 지자체로, 민간 이익단체로 옮겨갔다. 행정·입법·사법부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삼권분립의 원칙은 교과서 속에나 존재하는 유물이 됐다. 번번이 표류하는 정부의 주요 정책들은 이 같은 권력지형 변화를 여실히 방증한다.

행정권력이 이처럼 구조적ㆍ추세적으로 쇠락하는 와중에서는 누구를 총리로, 장관으로 앉히든 사정이 별반 나아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은 당장의 개각, 부처 개편보다 더 중요한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변화된 권력지형, 불리한 정책환경 속에서 행정부의 역할과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고 다른 권력기관들과의 소통을 개선하도록 정치력을 발휘하는 일이다. 우선 행정부의 새 역할을 일방적인 정책입안자에서 다자적인 이해 조정자로 변화시키고 새 위상은 권력의 중추에서 소통의 중추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 현 정부가 지난해 부생가스 폐기ㆍ이용을 둘러싼 철강ㆍ에너지 업계 간 갈등을 풀고 서로 윈윈할 수 있도록 광양~여수 구간 해저터널을 뚫도록 합의를 이끈 것은 이해조정자, 소통 중추로 제 역할을 한 성공적 사례다. 앞으로 정부는 권력자·정치권의 공약이나 고위관료의 소신을 하향식으로 추진하기보다는 이처럼 국민의 요구를 상향식으로 파악해 그 이해를 조율하고 요구를 충족시키는 쪽으로 일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사람 몇 명, 조직 몇 곳을 물갈이하는 땜질식 하드웨어 개혁으로는 불가능하다. 복잡한 이해를 조율하고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관록과 전문성을 갖춘 행정가를 집중 육성하고 직급ㆍ계급에 관계없이 창의적이고 주도적으로 조율업무를 할 수 있도록 수평적인 행정권한 위임이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다. 이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계급제 관료체제에 꽉 막힌 행정의 소프트웨어를 개혁하는 근본적인 처방을 병행해야 이뤄질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현행 대통령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도 담겨야 할 것이다. newsroo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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