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수술' 작심하고 칼 뽑아… 개혁 성공여부 '그녀 손에'

[피플 인 이슈] 메리 샤피로美 SEC 위원장
취임후 감독권한 강화등 내부개혁으로 SEC 위상회복
골드만삭스 기습 제소… 부정행위 입증증거 확보한듯
"고발 맞대응도 만만치 않아 승자 누가 될지는 미지수"



어느 누구도 쉬운 일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첫 상대는 '세계 금융계의 큰 손'으로 군림해 온 월가의 간판기업 골드만삭스다. 금융규제 개혁 반대 입장을 밝혀 온 미국 공화당도 "금융개혁 법안 심의 개시를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 미국 정부가 골드만삭스를 제소한 것은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며 27일(현지시간)부터 시작되는 '골드만삭스 청문회'에서 맞설 태세다. 골드만삭스를 사기혐의로 제소해 이 회사와 관련된 금융위기의 진상을 하나씩 밝히고 있는 메리 샤피로(55ㆍ사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의 진검 승부에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오바마 미 대통령의 국정 최대과제이자 G20 등 주요 국제 회의의 핵심의제인 금융규제 개혁의 성공여부가 그녀의 손에 달려 있다. 골드만삭스의 제소 결과에 따라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잠자는 무력한 기구','이빨 빠진 호랑이'란 비아냥을 들어온 SEC의 위상 회복을 위해서도 그녀는 이번 승부에서 물러 설 수 없는 처지다. 최근 SEC의 기세를 살펴 보면 '폰지 사기' 사건에 연루되는 등 과거 무능함과 무기력증을 보였던 SEC가 아니다. 그야말로 '샤피로의 SEC'로서 전혀 다시 태어난 듯하다. 이달 들어서만 '주식 대량거래자 거래내역 신고 의무화', '초고속 시간차 거래 금지', '자산담보부증권(ABS) 발행 기업에 대한 5% 보유 의무화', '주식 상장지수펀드(ETF) 조사', '19개 대형은행 분식회계 조사' 등 그야말로 눈부신 활동을 보이고 있다. 그녀가 지난 16일 골드만을 제소했을 때만 해도 사기혐의가 뚜렷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녀의 제소에 반신반의했던 WSJ 등 미국 언론들도 최근에는 "이번 싸움의 승자를 예상하기가 어렵다"고 타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녀의 이번 골드만 제소는 작심한 흔적이 뚜렷하다. 금융회사를 제소할 때 사전에 통보해 주던 관행을 깨고 주말을 이용해 기습했다. 협상의 여지를 처음부터 완전히 배제한 것이다. 샤피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발탁한 SEC 창립 74년 만의 첫 여성 위원장이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샤피로가 SEC 출신으로 증권업협회(FIRA) 회장을 지내면서 자본시장 자율규제안을 만드는 데 앞장선 게 오바마의 눈에 들었다. 그는 20여년 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당시 SEC 위원에 지명된 이후 조지 H.W 부시, 빌 클린턴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당파를 넘어 증권관련 유관기관에서 시장관리감독 업무를 맡아 왔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월가를 수술할 규제 전문가가 절실했던 오바마에게 '베스트 오브 베스트'의 인사였던 셈이다. 그녀는 취임 1년 만에 골드만삭스를 제소했다. 이에 대해 미국 언론은 '갑자기'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SEC의 개혁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샤피로는 SEC 위원장에 취임하자마자 내부 개혁에 나섰다. SEC 조사요원이 금융사건 혐의자에게 소환장을 발부할 때 SEC 5인 위원회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 규정부터 없앴다. 사실상 SEC의 손발을 묶은 이 규정은 조지 W 부시 정부 시절 만든 것이다. 시장에 대한 정부 간섭을 최대한 줄이자는 취지였지만 실제론 혐의자에게 시간을 벌어주고 SEC 조사요원의 활동만 위축시켰다. 변칙 거래로 파생상품 투자 손실을 감춘 리먼 브러더스의 무분별한 레버리지 투자나 20여 년 동안 사기극을 벌여온 버나드 메이도프 사건 등을 적발하지 못한 것도 이런 내부 분위기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특히 메이도프 사건은 SEC 조사관이 수년 전 제보를 받고도 번거로운 내부 절차 때문에 미적거리다 놓쳤다는 전언이다. 뜨뜻미지근했던 조사국장도 연방 검사 출신의 매파 로버트 쿠자미로 갈았다. 이번 골드먼삭스 제소를 현장에서 지휘한 사람도 바로 쿠자미다. 샤피로는 "내가 한 인사 중 쿠자미 발탁이 가장 성공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에 대한 신뢰가 깊다. 샤피로가 골드먼삭스를 겨냥해 칼을 빼든 건 그 동안의 개혁 작업에서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 해 70만 건에 이르는 내부 고발이나 첩보를 바탕으로 골드먼삭스의 부정 행위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를 찾았을 공산이 크다는 게 월가의 반응이다. 27일 공방을 앞두고 공개된 골드만삭스 핵심경영진들의 e메일 검증에서 이 회사가 금융위기를 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지난 23일 청문회에서 신용평가사와 월가 금융기관이 합작해 투자자들을 오도하게 한 실태도 이미 밝혀졌다. 이는 SEC가 확보한 막대한 증거 자료중 단지 한 조각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DEC가 골드만을 제소할 때 전혀 협상의 여지를 주지 않은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다만 SEC는 아직 어떤 증거를 확보하고 있는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월가에선 샤피로가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반응도 나온다. 협상의 여지가 없어진 이상 골드먼삭스로선 SEC 고발에 맞대응하는 수밖에 없다. 벌써 골드만삭스는 오바마 정부에서 초대 백악관 법률 고문을 지낸 그레고리 크레이그를 변호사로 영입했다. 골드먼삭스의 자문단에는 크레이그 외에도 켄 두버스타인 전 백악관 비서실장과 잭 마틴 '공공전략' 대표도 포진해 있다. 이번 소송 사태의 승자가 누가 될지는 미지수다. SEC가 승소하면 금융위기를 앞두고 적나라 펼쳐졌던 월가 금융기관들의 부도덕성과 불법ㆍ위법ㆍ탈법 행위를 만 천하에 공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오바마 정부의 금융개혁도 한층 수월해 질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소송에서 지면 안 그래도 구겨진 SEC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고 샤피로의 거취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메리 샤피로(Mary Schapiro) 약력


▦1955년 뉴욕 출생
▦1977년 프랭클린 & 마샬대학 졸업
▦1980년 조지워싱턴대 로스쿨 졸업
▦1981년 미국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고문변호사
▦1988년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
▦1996년 전미증권업협회(NASD) 증권거래규제협회 초대 사장
▦2006년 NASD 회장
▦2007년 미 금융거래업무규제기구(FINRAㆍ전 NASD) 회장 겸 CEO
▦2008년 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 자문위원회 위원
▦2009년 1월 제29대 SEC 위원장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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